세계가 바로 사대부 문학의 세계의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세계의 중요한 일면이 됨에 대해서는 아무 의심이 없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조선조 문인들의 이념적 기반은 그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이념의 토대이기도 했던 유교였기에, 그들은 대개 유가적 관점에서 대상을 인식하고
이후의 후기 가사들은 작자 층의 확대와 아울러 작품에 따라 교술성과 서사성, 그리고 서정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점차 현실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 현실의 구체적인 사물을 작품에 옮겨와 서술하는 장르적 변모를 보임으로써 당대적 현실의 다양한 국면을 가사의 형식에 담아내었다.
지향 속에서 형상화되면서 끝이 나는데 이러한 정서적 국면은, 집단적 이념과 정서의 표출로 끝맺는 <태평사>의 경우와는 매우 대조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누항사 (陋巷詞)>
<누항사>는 전쟁으로 빚어진 현실의 형상을 그리되, 그러한 현실 속의 개인적 삶에 대하여 보다 세밀하고도 주의 깊은 시선
고산은 1587년(선조 20)에 서울에서 태어나 1671년(현종 12) 85세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불우했으나 문학적으로는 뜻 깊은 한 평생을 살다 갔다. 그의 몸집은 작고 체질도 연약한 편이었으나 어려서부터 엄숙하고 단정한 몸가짐을 가진 꼬장꼬장한 선비로서 평생토록 《소학》을 손에
문학개론》, 景仁文化社, 1996, p.161.
이에 대해서도 여러 국문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조윤제(趙潤濟)는 “가사(歌詞)는 음악 곡조에 대한 가사와도 혼돈될 염려가 있으니까 가사(歌辭)라는 문자를 쓰고자 한다.” 趙潤濟,《朝鮮詩歌史綱》, 東光堂書店, 1937, p.236.
라고 말했다. 반면 ‘가사(歌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