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를 떠올리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유가는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자리했었고, 이에 비해 불교는 종교적 색채가 더 짙게 나타내었다. 하지만 도교는 위의 두 사상과는 달리 어떠한 체제로 자리 잡거나, 종교적인 근간을 이루기보다는 민간에 스며 있어, 중국문화의 근저로서
가지 덕목이다. 맹자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사단(四端)이라 하여 인의예지(仁義禮智) 뿐이었으나, 중국이 진나라로 통일되고, 진나라가 통일의 원리로 오행론을 수용하면서 문화 전반에 걸쳐 모든 부분을 오행에 맞춰 정리하던 중, 전한(前漢)때의 인물인 동중서(董仲舒)가 공맹(孔孟)의 교리에 입각하여
가지로서 유교(儒敎), 도교(道敎), 불교(佛敎)이다.
유교적인 철학 이념이란 곧 공자(孔子)의 학설을 말한 것으로 공자는 美를 윤리 사상을 높이는데 두고 최고의 美와 최고의 善의 일치를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공자의 회화관은 “좋아하면 반드시 회화 속에 있는 진의를 즐거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
고대에서 중세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역할은 막중했다. 고대의 생산방식과 사회질서는 공동체적 생산양식이었다. 이 사회에서 착취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착취적 사회질서를 정당화해줄 지배이데올로기도 필요치 않았다. 이러한 초기의 공동체적 생산양식에서
문화(불교)와 만남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신도)을 의식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해 준다. 이 '신도'란 말은 아마도 당시 중국에서 도교가 자칭 '신도'라 한 것을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신도의 형태는 역사적으로 여섯가지 즉 신사신도(종교시설로서의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도로서 가장 기본적인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