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은 동학 조직에 나서 기본 조직의 하나인 접을 두는 제도를 강화하고, 여성을 위한 법문이 나타나기도 했다. 해월이 60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적인 시위운동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교조신원운동과 동학혁명이다. 동학혁명의 참패이후 해월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도망자
운동이 거족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한 민중 종교의 선두가 바로 동학이었다. 동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창시자이자 초대 교주인 수운 최제우와, 그의 제자이자 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이라고 할 수 있다. 수운 최제우는 1824년 경주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1861년에 동학을 창시하여 포
동학사상연구」, 중앙대 연구집, 허정(1987) “교육사상연구”, 석사학위논문,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p.2에서 재인용. 동학사상연구는 천도교측의 교리해설연구와 일본 관헌측의 치안대책상 조사연구 그리고 역사가들에 의한 사상사연구의 3가지를 들고 있다. 이중에서 역사가들에 의한 연구는 3계열
동학은 종교적 교리를 이용해 민중들의 도덕성 회복을 통한 의식개혁을 성취하고자 하였고, 그때까지 역사의 주체임을 단 한 번도 자각치 못했던 민중을 역사의 주역으로 사회 전면에 등장시킴으로써 근대적 민중운동의 단초를 제고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동학의 민족운동은 동학천도교로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