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서는 이 세기가 지니는 이질적 요소들의 혼재가 가장 잘 표현됐다. 18세기의 초엽에는 한 점의 그림자도 없는 행복의 절정을 우아하게 그린 앙투안 와토(Antoine Watteau)가 있었다면,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자크 다비드(Jacque David)의 그림이 세기말을 장식했다. 와토의 그림에는 야만적 현실과 추한 진실
장식미술에 비하면 새로웠을지 모르나 , 결과적으로는 사치스럽고 환상적이며, 여성적이고, 심지어 쾌락적이기까지 한 곡선적 과잉 장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새로운 양식을 탐색하는 목적은 프랑스의 로코코와 일본의 미술을 표절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양식의 디자인을 고안해내게 됩니다. 그 대표적 인물은 '헨리 반 데 베르데 '로 이는 순수회화가 아닌 산업디자인의 필요성에 대해 말을 하고 회화로부터 디자인의 독립을 선언하며 이때에 '산업디자인'이라는 말이 완성되는데, 이를 주축으로 '아르누보 '양식이 탄생한 것 입입니다
성격이 지배적이다. 교황들은 호화로운 교회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궁정과 별장, 정원을 지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종교예술은 결정적으로 세속예술과 분리된다. 르네상스와 중세 시대에는 순수한 종교적 목적을 위해 생산된 예술작품과 세속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작품 사이에 많은 중
공예라는 것이 그가 자아내는 생활 감정 그 속에서 생활의 미를 만들어내고 조용하고 향기로운 생활감정을 만드는 원천이라는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다.
과거의 공예, 그러니까 전통적인 공예는 왕이나 귀족의 생활을 위한 물건이 가장 많이 남아 있고, 또 오늘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진열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