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목적함’이었으나 자세한 작품 활동은 알 수가 없다. 문학 이외에도 극단을 조직하여 연극공연을 하였으며 합창단을 만들어 순회공연도 가졌다.
한편 1923년 새로운 경향의 문예운동을 꾀한다는 목적 하에 김복진․연학년․안석주 등이 토월회에서 탈퇴하고 박영희․김형원․이익
운동의 영향이 크다.
3.1운동을 전후한 민족 사회운동의 사상적 기조는 민족의식의 고취, 신교육의 확대, 민족산업 육성 등 애국적인 민족 개량주의에 근거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조직 단체의 지도자들이 소시민적인 지식층이나 민족 자본가들이고, 그들에 의해 주도되는 민족 운동의 성격 또한 그만
프로문학론은 운동의 단계를 마감하고 해체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러시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도입되어 내용․형식논쟁- 예슬 대중화론 - 리얼리즘론을 잇는 창작방법론의 맥을 계승하게 된다. 소비에트에서 유물변증법적 사실주의의 도식성, 경직성 등을 극복하기 위한 창작방법론으로서
방향전환에 관한 이론투쟁. 셋째, 일본에서 활동하던 제3전선파의 일시 귀국과 그들의 촉매적 열할. 이러한 세 가지 요인 외에 내용・형식 논쟁을 통한 <카프> 자체 내 노선정비의 필요성 인식, 그리고 아나키스트와의 논쟁을 통한 프로문학전체의 구조 개편 및 타 세력과의 관계 청산에 대한 필요성
문학으로서는 성공적인 작품이나 2기 소설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당대 목적의식 논의의 절대성에 의해 김기진은 또다시 자설을 철회하고 만다. 이러한 과정만 보더라도 다시 제 1차 방향전환론에서는 창작과 관련하여 의식성만 논의하였지 문학의 형성화라는 특수성의 문제는 전혀 언급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