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문학은 이전의 문학적인 기교가 크게 퇴색하고 자신의 문학 활동을 신변잡기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통속소설 그리고 중국 소설이나 야담의 번역, 중국의 고전 정리에 한정시킨다.
해방 후에는 확대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역사와 민중의 삶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며 일련의 역사소
소설로서의 등단은 1930년‘신생에 단편‘수염’을 발표하면서 이루어졌다. 1933년 구인회에 가담한 이후 반계몽, 반계급주의 문학의 입장에 서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구보씨의 1일’ ‘천변풍경’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그의 소설에 있어 특기할 사항은, 문체
박태원의 출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서울 토박이라는 점이다. 천변의 차옥정은 주로 중인계층들이 살고 있었던 곳으로 약국을 비롯하여 다방, 술집, 이발소 등 근대적인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던 지역이다. 중인들은 19세기 전반에 이르러 경직된 사화와 국가 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대변함
박태원은 1930년대에 「천변풍경」과 「소설가구보씨의 일일」등 주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세태소설 혹은 모더니즘계열의 소설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시기적으로는 30년 가량의 차이가 있으나 일본에서 역시 국가 개념이 정립되면서 시작된 개인이라는 개념이 국민적으로 확대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
박태원의 영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의 문학 활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즉 그의 서구문학에 대한 관심을 단순히 번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통해 문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동시에, 서구 문학의 새로운 기법을 소설 창작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