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헤센의 폭압정치에 비판을 가하는 반면에 지배계급에 의해 착취당하는 민중에게는 따뜻한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의 웅변시간에 그는 ‘카토 폰 우티카(Cato von Utika)`에 대한 변론을 한 적이 있으며, <자살에 대해서>라는 작문 및 <프로츠하임 시민 사백 명의 장렬한 죽음>이란 웅변에
현실에서 배제당하자 정치 현실을 외면하고 문학과 학문 영역에 몰두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복고주의에 반기를 들고 정치적 투쟁에 가담하였다.
1815년 7월 26일 체결된 신성 동맹(Heilige Allianz)을 체결하여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를 위하여 모든 종류의 혁
규범에 반해 미적 관조를 방해 하는 것. 즉, 반미적인 것을 말한다. 그것은 현실의 자연 현상 및 정신 생활속에서 얼마든지 발견되고 예술품에도 종종 혼입되어 있다. 대개의 고전적 예술은 추와는 무관하거나 소원의 미의 예술이고, 따라서 고전적 미학은 추를 미의 부정형태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다.
편에 서고, 문학에서는 역사와 사회 속에 묻힌 평범한 개인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선다 함은 이러한 그의 자연사상을 근간으로 해서 볼 때 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도덕적` 인간의 자율성, 죽 자유 의지를 믿는 이상주의 대신에 뷔흐너는 불완전한 인간의 치부를 숨기지 않는 현실주의를 내세우며,
현실이 사고의 산물이라고 확신하였으며, 정신활동 과정과 문화과정을 그런 입장에서 집중 연구하였다. 또 함부르크의 대은행가 바르부르크(Warburg) 가문의 자금 지원과 그 가문의 학자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1866-1929)의 노력으로 함부르크 대학에 설립된 <바르부르크 연구소>는 문화학 연구의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