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있는데도 멀리 떠나 있는 꿈을 꾼다거나, 또는 죽음 직후에는 외관상 아무 변화는 없으나 살아 있을 때의 상태와는 다른 것을 느낀다. 그래서 육체와 유리되어 활동하는 원리, 즉 영혼을 상정(想定)하게 되었다. 수면과 가사(假死)는 영혼의 일시적 부재(不在)상 태이며, 죽음은 그 영원한 부재상
사림 세력은 대부분 제거되었다. 이때부터 훈구 정치 시대의 말기적 현상인 외척 권신정치시대 공신 세력이 늙어 죽고 사림파의 과도한 개혁 주장에 염증을 느낀 왕이 등을 돌림으로써 정권은 외척 권신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김안로․윤임․윤형원 등이 그들이다.
가 과도적으로 생겨나
화 정책에서도 문신의 사가독서(유능한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게 하는 제도)를 다시 실시하여 학문의 질을 높이고 조정의 학문 풍토를 새롭게 했만? 세조 이래 3조의 `국조보감`을 편찬해 후대 왕들의 제왕 수업에 귀감이 되도록 했다. 하지만 이 4년 동안 연산군은 누차에 걸쳐 사림파
화를 입고 회천에 유배 중이던 김굉필(金宏弼)에게 수학하였다. 학문은 <소학>,<근사록 近思錄> 등을 토대로 하여 이를 경전연구에 응용하였으며, 이때부터 성리학연구에 힘써 김종직(金宗直)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士林派)의 영수가 되었다. 이때는 사화 직후라 사람들은 그가 공부에 독실함을 보고 +
화에 노력하였다. 훈구학의 대표적 인물은 권근, 정인지, 신숙주, 서거정 등이 있다.
2) 사학파(사림파)의 형성
조선왕조의 개창을 둘러싸고 온건파 사대부들은 왕조교체가 유교적 윤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역성혁명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고, 향촌에 내려가 학문과 교육에 주력하였다. 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