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의 배치가 서구의 그것처럼 단일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의 식민지체제의 구체적 현실로부터 기인한다.
유선영은 근대화와 독립이라는 현실의 이중적 절대 명제를 담지한 식민지체제에서 일본에 대한 혐오와 서구(미국)에 대한 동경과 우월의 중첩은 서구중심주의적인 식민
와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이므로 이를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해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곧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의 해체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초기 안병직에 의해 주창된 이론만으로 모든 식민지근대화론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식민지근대화론
와 금융조합의 2원체제를 유지하였다. 금융조합의 경우 해방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어 현재의 '농협'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김광신, 「한국 독점자본의 농업지배에 있어서 농협의 역할에 관한 연구」, 고려대 사회학과 석사논문, 1989,
같은 책에서 재인용
이런 과정 속에서 조선의 농촌단체는 농
와 함께 배타적 소유권에 입각한 등기부상의 소유권자에게 과세부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였다. 따라서 일제가 조선에서 식민지 경제체제 확립의 기초작업으로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은 근대적 토지소유제도의 확립과 지세제도의 변화를 가져왔지만, 이것은 결국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물질적
주의 맹아론'은 한국 사회의 자주적 발전이 가능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일제의 침략으로 왜곡 되었다는 것을 밝히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반면 고종의 무능과 명성황후를 비롯한 민씨 척족에 의해 피폐해진 조선을 일본이 합병함으로써 한국의 산업화와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