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의 관습화된 혼인 규제에 구속을 받는다. 이처럼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서 여러 절차를 거쳐 신중하게 이루어지며, 당시 사회와 시대상을 반영한다. 여기서는, 조선시대의 혼인 의례와 혼인 풍습과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사회구조와 가치관, 여성의 지위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기생>
그 다음으로 '은근자' '은근짜'라는 기생이 있었다. 은근자란 은근히 몸을 파는 자녀를 말한다. 자녀(姿女)란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들을 말하며, 양반 사녀 중에서도 세 번 이상 혼인한 여성들 또한 여기에 포함되었다. 조선시대에서는 이런 여성들을 특별 관리하기 위한 블랙리스트라
혼인 또한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양태를 달리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혼인의 변화 양태를 추적해 나간다면 당시 사회의 변화를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그 ‘본 모습’을 추측해 내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본 과제 수행에서는 시대 변화, 구체적으로 조선
이를 전국적으로 퍼뜨린 것은 바로 그러한 추세를 말해준다.
조선왕조의 주요 창업자의 한 사람인 정도전은 신랑이 신부 집에 머물면서 처가살이를 하는 고려~조선 초기 혼인제도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신랑이 처가에 머물면서 며느리도 시댁과 남편에게 소홀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의사와 처리에 순종해야 하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여자는 평생 자기 뜻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
, 내외법 등을 만들어 여성들을 규제하였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그 이전시대까지 지켜오던 관습을 바꿔놓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