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신화가 종교 경전과도 같이 이해되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주몽신화는 고구려인들의 실제로 한 일들,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그들이 부여하는 중요성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본 발표문은 그간 이루어진 주몽신화의 시대별 연구와, 쟁점이 되고 있는 ‘동명왕신화와 주몽
왕 비문」은 414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몽신화>에 있어서 가장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반도의 건국신화 중에서 자신들의 시조에 대해 직접 기술한 유일한 신화이므로 <주몽신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옛날, 시조 추모왕이 기업을 창건하시었도다. 북부여
주몽’에 관하여
우선 주몽신화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이 신화의 주인공인 ‘주몽’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많은 사람들이 ‘주몽’이 이름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몽’이라는 것은 부여의 속어에서 나온 말이다. 부여의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 <동명성왕>조에 보면 ‘시
신화 그리고 역사를 모두 수록하고 있다. 고구려 시조인 <주몽신화>에 대해서는 해부루와 주몽, 유리의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다. 본지에서는 <주몽신화>만을 다루고자 하으로 유리왕에 대한 부분은 생략한다.
[1] 시조 동명성왕의 성은 고씨요 이름은 주몽이다.
[2] 그 이전에, 부여왕 해부루는 늙도록
주몽의 아들이므로 출생에서 신화의 내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 대부분의 건국 시조들이 알에서 탄생하였다. 부여의 동명이나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혁거세, 가야의 수로왕은 모두 알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난생신화는 한국의 초기국가 형성을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