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합리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집단적인 합리성이 아니라 개별적인 합리성을 말한다. 이는 개체의 주관성을 회복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아도르노의 주체개념은 하버마스의 전체적 주체와는 대조적으로 개별적이다. 이 개별적 주체를 억압적인 사회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모더니즘과 논쟁하고 있는
릴케나 아도르노와 비슷하게 우리의 것들 속에서도 얼마씩 엿보이고 있다. 삭막한 도시 풍경에 대한 환멸과 그에 이은 자연에의 회기 혹은 동화의 강한 의지를 우리는 쉽게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정현종 등의 시작들로부터도 우리는 이러한 자연에의 미메시스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우리
예술의 본질적 원리는 ‘사상에 감각적 형태를 씌우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상징주의의 목적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상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상징주의 시인들은 시적 언어를 내면생활의 상징적 표현으로 여겼으므로 화가들에게도 신비와 마술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줄 것을 요구했다.
미메시스 용어 자체가 제전적 의미로 출발한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사장의 제사행위는 그 신의 영웅적 행위를 음악, 마임, 춤 등으로 재현하는 것을 포함했다. 이러한 이유로 특히 음악적 모방을 모방이라기보다는 재현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
두 번째, 그들에게 있어 모방의 개념이 자
릴케나 아도르노와 비슷하게 우리의 것들 속에서도 얼마씩 엿보이고 있다. 특정한 한 시대의 특징을 가장 압축적이면서도 분명하게 반영해주는 한 수단으로서의 문학의 한 역할을 감안해 볼 때, 이러한 한 시대의 특징과 그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 시대의 문학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충분히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