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동부지역을 일명 北間島라하는데 일반적으로 간도라 함은 이 북간도를 지칭한다. (任桂淳, <백두산정계비와 조․청간의 乙酉․丁亥국경회담>(《한국의 북방영토》, 백산학회 편, 1998), p12~13.
지역의 개척, 이로 인해 벌어진 조․청간 국경분쟁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정계비 설치의 의미와
제1장 서론
현대의 국제사회에선 과거에 비해 국경의 기준이 명확해짐에 따라 접경지역에 대한 분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의 독도분쟁, 중국과의 간도, 이어도 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영토는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고 당사 국가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근거
과 주변 이민족들에 대항한 고구려의 대외정복의 역사는 우리가 오늘날에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고구려의 대외정복활동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가장 활발했고 성과도 가장 컸다. 이 시기의 두 왕이 바로 광개토왕과 장수왕이다. 이 글에서는 고구려의 대외관계와 영토확장과정
간도협약을 체결한 9월4일이 코 앞으로 다가 왔지만 무관심 속에 100년의 세월이 그냥 지나갈 지경에 이르렀다.
간도 땅이 우리 영토가 된 역사적 기록이나 위치 및 크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한국인이 많이 있다. 사료에 근거한 위치는 압록강 북쪽 집안(고구려수도) 일대의 서간도, 두만강 북쪽 및 토문
중국이 남북한이 통일되면 간도 등 만주지역 내 우리 민족의 옛 터전이 분쟁지역화 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09년 청·일간의 불법적인 간도협약에 따라 현재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그 주변의 광활한 지역이 중국에 귀속됐고, 백두산은 중국의 한국전 참전 대가로 일부가 중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