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킨의 작품들은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사진들이 많다.
단지 충격을 주는 데에 그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이상의 의미를 목표하고 있다. 시체나 장애인 같은 소재와 사진이라는 현실적인 표현 방식은 인지적으로 대단히 불쾌하지만 그만큼 직설적으로 주제를 표현할 수 있다. 시각적 충격에 가려서
모든 우연적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연출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회화의 주관적이고 서정적인 측면, 즉 모호성을 제거하였다.
일반적으로 회화와 사진의 장점이라 생각되어지는 것들을 제거함으로서 그만의 작품세계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 이면의 건축적 이론을 꾸준하게 발표한 바 있다. 1980년대 이후 그는 10여년간의 건축적 실험과 성과에 기반한 새로운 작품들을 설계하여 세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론가이자 건축가라는 양면적 직능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명성이나 영향력에 비해 작품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대신에 그는
작품은 낭만주의 회화의 거장 외젠느 들라크르와의 1827년 그림 <사다나팔루스의 죽음>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들라크르와와 제프 월의 작품은 조금 다른 텍스트를 가지고 있다. 들라크르와가 그림을 통해 말하려고 한 예술적 컨셉은 서술성에 관한 것으로 쉽게 말하면 회화적 기록성에 대한 접근이다. <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이다. 전쟁으로 인한 숱한 변화 속에서 유럽예술가들의 나치의 공포를 피해 뉴욕으로 이주하였으며 이러한 예술가들의 대이동의 여파를 타고 뉴욕의 미술가들의 작품생활은 점차 풍요로와 졌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혼한으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전통과 질서에 대한 불실과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