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책(時務策) Ⅱ - 유교정치론(儒敎政治論))
① 성지(聖旨)로써 판단하여, 요해(要害)를 택하여 강역(彊域)을 정하시고, 토인(土人)으로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 하는 자를 가려 그 방수(防戍)에 충당토록 하시고, 또 그 중에서 2, 3인의 부장(副將)을 선임하여 통령케 하시면,
乞將此兩虛, 斷於宸衷, 擇
인정함으로써 신의 관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은 타일러의 학설은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종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또한 원시인에게서 꿈이 그처럼 중대한 경험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두고 논란도 있었으나, 이원론(二元論)의 사고양식을 설명하는 양식으로서 아직도 그
불교적 색채를 내세우면서 자기 세력의 독자성과 왕권중심적 권력 주도를 전면에 드러냈다.
예) 마진이나 태봉이라는 불교적인 나라 이름.
호족정책 : 호족들의 세력권을 인정하기보다는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고, 불법에 의지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려 했다. 예) 미륵불을 자칭. 큰아들을 청광보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위와 같은 현상은 결국 인구의 지역이동과 수직이동을 낳았는데, 지역이동이란 流民化 즉, 귀족들의 자기항쟁에 기인한 통치기강의 문란과 토지의 집중화에 기인한 것으로 많은 수의 인구가 경주에서 지방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수직이동이란 권력 다툼이 전란으로 일어
부각시켰다.
- 후백제 건국신화는 이야기가 단편적인 것에 그치고 통치이념을 갖추지 못해 미완성이다.
- 궁예는 중세에 들어선지 이미 오래되어 일반 백성들에게도 널리 자리잡은 합리적 비판적 의식을 꺾지 못하고 백성에게 살해되었다. (고대와 중세의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