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도산잡영』「반타석」
맨 위의 시는 고산 윤선도가 32세 때 경원의 유배지에서 쓴 것이다. 고산은 이 작품에서 산과 물과 외기러기라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어버이를 향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으며 ‘길고길고’, ‘멀고멀고’와 같은 평이한 어휘의 반복을 통해 정서의 진폭과 여운을
고인(古人)을 못봐도 예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쩔고? (도산십이곡)라 노래하였던 것이다.
성현이 닦아놓은 길이기에 그대로 따라가면 될 터이다. 하지만, 그 길은 지극히 쉽고도 지극히 어려운 길이었다.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나 그 아니 쉬운가. 성인
계속하겠다는 종장에 놓여 있다.
其五
청산(靑山)은 엇데하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
유수(流水)는 엇데하야 주야(晝夜)에 긋디 아니하는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
제11수에 등장하는 ‘청산’과 ‘유수’ 역시 자연 자체로서의 독자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시어가
자연을 등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백구=화자 자신 : 백구가 향하는 먼 곳은 곧 조정이 있는 곳.
이러한 백구의 마음은 곧 화자의 마음과 상통하는데 자연에 묻혀 있고 천석고황을 노래하였지만은 군주를 염려하는 마음은 떠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後4曲>
스스로의 반성을 노래하고 있다.
곡은 3년 동안 정성을 다해 어머니의 묘소를 돌보았으며 새삼 ‘인생이란 무엇인가?’하는 회의에 빠졌다. 사람은 왜 태어나며 왜 죽지 않으면 안 되는가? 깊은 밤 적막한 산골에서 홀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구해 보았지만 도저히 풀길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3년이 지나갔다.
18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