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일본문학과 전후문학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전쟁이 끝나자 전쟁 중 무언의 저항을 하던 나가이 가후, 시가 나오야 등 대가들이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무뢰파(無賴派)라 불리던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다자이 오사무 등은 기성질서로부터의 탈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또 전쟁 전
천 등과 함께 조선 문학 건설 본부를 조직 하였고 1946년 2월, 조선 문학가 동맹의 중앙 집행 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 발표된 「해방 전후」는 조선 문학가 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 기념 조선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미군정의 남로당 불법화로 월북하였다가 1953년 임
Ⅰ. 일본문학과 물어문학
土佐日記와 蜻蛉日記 시대의 많은 작품들의 제목이 物語, 私歌集, 日記 등의 명칭을 병용하고 있었다. 그 시대의 장르 의식이 불분명했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또한 두 작자 모두 物語나 私歌集의 영향과 모방을 근거로 하고 있다. 우선 蜻蛉日記가 그
일본 헌병대의 통역이 되었다가, 1942년에는 인도네시아로 피신하여 은둔생활을 하였는데, 1945년 일본 패망직후 일본 헌병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한다.
욱달부의 소설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욱달부 자신이 “문학작품은 모두 작가의 자서전 같다”고 하였듯이 하나는 초기의 자아표현류의
. 그는 당시 일본에서 유포된 신흥사회과학에 빠져든 다음 특히 계급주의를 지향한 『씨뿌리는 사람』을 탐닉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정신적인 동조자를 찾아 나서서 먼저 배재고보의 동창생인 박영희, 이상화, 안석주 및 상기 네 사람을 더 가담시켜서 구성원들의 이름 두문자를 딴 PASKYULA를 발족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