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게 있어 대표적인 '타자'는 도쿠가와 시대에는 중국이었고 근대에는 서양이었다. 타자라는 존재로 인해 일본은 자신의 고유성을 인식하는 동시에 그것의 보존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많은 이들이 이를 위한 전투적인 정치적, 문화적 행동을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타자, 즉 서양에 대한 저항이
식민지 후기의 한국 시에서 또 하나 주목되어야 할 시적 노력은 시조 부흥론이다. 주로 중인지식계층에 의해 명맥을 이어온 시조는 일본 식민주의에 대항하여 한국적인 것을 발굴하고 지킨다는 명목 아래 한국 지식인들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지적 제스처에 불과하던 시조를 정당하게
감행된 것이었다. 화려함의 이면에는 거리를 헤매는 실업자-신당리의 빈민굴- '경성상인'등의 파산과 전락, 뒷골목의 거지-매음-마약 등 도시화가 가져온 어두운 부산물들의 놓여 있었
2. 1930년대 시단의 경향과 주요시인 작품 분석
2.1. 프로 이후의 프로
2.1.1 30년대 프로시론의 전개양상
30년 3월에 코민테른이 ‘1국 1당의 원칙’-스탈린의 ‘민족문제테제’에 기초하여 나온 외국에 거주하는 자는 주재국의 노동자·농민 해방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국제주의 관철요구- 을 내세우자 해외 주재 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 해외본부-만주총국, 일본총국등-를 해체하고 해당국가의
30년대 문학의 흐름
(1) 리얼리즘의 쇠태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우리문학을 이끌었던 는 1931년 ‘1차 검거 사건’과 1933년 ‘신건설사 사건’으로 그 위세가 크게 위축되었고, 카프의 대표 주자였던 박영희의 전향문으로 그 뿌리부터 심각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조직 내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