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된 때이다. 다다미가 완전히 깔리고 난 다음부터 노우・다도・꽃꽃이・세끼데이등의 문화가 나타난다. 특히 중국풍의 다문화가 왜풍의 다도로 바뀌게 된 것은 다다미 위에 앉아 차를 마시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이다.
우산을 통해서도 일본인의 축소지향 성
일본의 지원 약속아래 갑신정변을 일으키나 실패한다. 이들은 중국의 사대를 없애고, 황제의 권한 축소와 입헌군주제로 바꾸려는 개혁시도와 문벌폐지 주장으로 근대국가를 지향하였다. 이후 개화사상은 (애국) 계몽운동과 자강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는 데, 반제국주의적 성격으로, 서구 열강에 종속적
일본 사람에게 자연은 무서울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이러한 외경심도 일단 그들이 관리할 수 있는 한정된 공간 속에 들어오면 그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법이 없이 철저하게 그 공간 속으로 몰아넣고 축소하여 재구성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넓은 공간의
문화 형성 노력이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 및 민간기관의 내부 지식자원 위주의 한정된 지식 경영으로, 외부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고객을 포함한 이해관계자 등 외부 지식 자원 유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당면과제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지식 창조 시대
지향하지만,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나 개인주의에 기반한 문화나 정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서구의 물질과 한국의 정신, 전통을 강조함에 따라서 남성 경험에 관해서는 서구성을 취하되, 서구의 근대 체험에서 여성적이라고 간주되는 경험은 철저하게 억압하고 주변화시키고 일탈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