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을 부활시킨다(아도르노를 마르크스주의로 분류하는 것은 독일의 관행에서 보면 기이한 느낌을 준다). ‘변증법은 아직 생명력이 있는가’라는 부제에서 보듯 헤겔이나 마르크스적인 변증법은 메타서사나 변증법에 대한 포스트구조주의의 맹공에 의해 거덜이 났지만 아도르노의 변증법은 아직
1. 들어가며
20세기말,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탈 근대, 즉 포스트모던의 유령이다. 이 유령의 대표적인 특징은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문제 설정, 과학적 사회주의에 입각한 맑스주의적 프로젝트는 근대성의 산물이요, 이젠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본문내용
반갑습니다. 조금 전에 안사연 회장이 일기도 그렇게 어렵게 쓰냐고 했는데 사실 일기는 안써요.
어릴 때고 그렇고 앞으로도 쓸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은 방금 안사연 회장이 말한 것처럼 1장이
이미 발표된 글인데다가 지난번에 안사연에서 자본 100주년 기념 강연회를 주최할 때 고대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비철학으로만 생산된다고 주장한다. ꡒ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ꡐ철학ꡑ으로 생산된 적은 없다.ꡓ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1) 철학은 과학의 과학으로 자신을 주장한다. 철학은 종교, 도덕, 정치, 예술, 등등과 자신을 구분하고 특히 과학
포스트모던 생태학 등 매우 다양한 방법론이나 이론들을 포함하고 있는 바, 특히 맑스의 사상은 인간, 자연 그리고 이들간의 상호관계에 관한 생태학의 주요 방법론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겠다. 즉 인간이 노동을 통하여 자연을 변환시키고, 이를 통해 또한 자신을 변환시킨다는 맑스의 변증법적 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