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소태산 대종사는 「사람이 만일 선을 닦고자 할진대 먼저 마땅히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아 밖으로 천만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하고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 하라」고 하여 무시선이 진공묘유의 선임을 밝히고 있다. 무시선이 진공묘유
조동종 종무원을 찾아갔다. 여기서 조동종의 대표인 홍진설삼과 만나 친교를 맺고 그의 주선으로 조동종대학에 입학하여 일본불교를 수학하며 아사다퀀 등과도 교우하였다. 만해는 6개월여 동안 일본에 머무르며 서양에서 유입된 일본의 선진 문물을 지켜보고 유학중이던 최린,고원훈,채기두 등을 만
승려으로써의 한용운
불교인으로의 지향
국맥마저 끊어지는 비운의 1910년 8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선은 강제로 점령되는 수모를 겪고 있었다.
조선국토가 강점이 된 이후 해인사 주지로 있던 이회광은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의 지배하에 얽어맬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이른바 일본 조동종과
조동종대학림에서 3개월간 불교와 동양철학을 연구했다. 1911년 만주의 교포실정을 알아보기 위해 도만했다가 교포로부터 밀정으로 외심을 받아 총격을 당해, 이것이 만성 요두증의 원인이 되었다.
이 무렵 친일 승려 이 희광 일파가 원종종무원을 설립,1910년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동종과 연합맹약을
조동종대학림에서 3개월간 불교와 동양철학을 연구했다. 1911년 만주의 교포실정을 알아보기 위해 도만했다가 교포로부터 밀정으로 외심을 받아 총격을 당해, 이것이 만성 요두증의 원인이 되었다. 이 무렵 친일 승려 이 희광 일파가 원종종무원을 설립,1910년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동종과 연합맹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