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이황 선생에 대하여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었고, 우연히 1000원권 지폐를 살펴보게 된 것이 이번 조선시대 인물 조사 레포트 인물선정의 계기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구하기는 하겠지만 레포트를 쓸 때 책을 활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맨 먼저 도서관에서 퇴계이황에 관한 여러 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각각 5천원 지폐와 천원권 지폐에 새겨진 퇴계이황과 율곡이이 그만큼 그들의 사상이 우리사회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 보고서 에서는 성리학에 대한 개념과 정의 및 퇴계이황과 율곡이이가 내세웠던 이기론 등 성리학 전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Ⅰ. 고려 말 조선 초의 역사적 배경
고려사회에서 조선사회로의 왕조교체는 단순한 역성혁명으로서 왕씨왕조에서 이씨왕조로 전환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고려사회에서 조선사회로의 전환은 단순히 국가를 운영해가는 가장 최 정점에 있는 왕족의 교체만이 아니라 사회 운영의 주체세력의
이황(李滉)을 방문하였다. 그해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하고, 이 때부터 29세에 응시한 문과 전시(殿試)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29세 때 임명된 호조좌랑을 시작으로 관직에 진출, 예조·이조의 좌랑 등의 육조 낭관직,
조선의 개국을 맞아 두 진영으로 양분된다. 새 왕조에 참여하여 유교적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참여파 학자들과 고려 왕조에의 절의를 강조하며 새 왕조에의 참여를 거절한 절의파(節義派) 학자들로 나뉘어 입장 차이를 보이다가, 포은 정몽주의 암살 사건 이후로 절의파 진영의 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