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사대교린체제 및 조공체제
사대교린체제
사대는 중국, 교린은 왜국(倭國) 및 여진(女眞)에 대한
외교정책으로, 세력이 강하고 큰 나라를 받들어 섬기고
(事大), 이웃 나라와 대등한 입장에서 사귀어(交隣) 국
가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조선 개국 이래의 외교방침이
다. 특히 중국에 대한
대한 신하들의 의리와 충성을 요구하는 규범적 틀로 작용하였다. 조선은 국제체제에서의 정당성 또한 확보할 수 있었는데, 조공체제는 봉건적 질서에 따르는 국제체제였기 때문에, 조공국은 이를 통해 정권의 정통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관할권을 효과적으로 지배하는데 활용할 수 있었다. 이에 더
당한 것 이외에는 전쟁을 치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주변의 명이나 일본과의 관계는 단지 사대교린의 외교적이거나 조공무역, 또는 왜구의 문제 같은 경제나 치안의 문제로만 인식되고 나라와 나라 간의 전면적 국제전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사
중국은 중국을 다스리고, 이적은 이적을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중화의식이 변질되었다. 따라서 명나라는 강력한 황제독재체제를 바탕으로 이민족에 대한 철저한 쇄국정책을 실시했고 이는 청나라까지 이어졌다. ‘해금(海禁)’ 정책으로 육로를 통한 조공무역만 허용하는 결과가 대
대한항공이 중국 내 20개 도시에서 26개 노선을, 아시아나 항공은 22개 도시 30개 노선을 각각 운항 중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국제결혼을 아내의 출신지 별로 볼 때,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여자가 가장 많다.
천안함 사건 이후 동아시아에서 냉전적 외교관계가 부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일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