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고민의 일부분은 이러한 문제와 연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 이미 동일한 고민을 했던 니콜라우스쿠자누스(Nikolaus Cusanus)가 있었다.
그는 하나의 언어로 절대자의 형이상학적인 측면과 현실적인 측면을 동시에 설명해내고자 시도했다. 이를 위해 그는 오랜 철학적 전통을 따라, 특
지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몇몇 인물들은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은 형편에있다. 르네상스기의 플라톤 철학의 발전을 파악하려면 고대 로마와 라틴의 중세로 되돌아가야 한다.플라톤의 {타마이오스} 일부도 키케로의 일부 철학적 저작에서 플라톤적 신플라톤주의 적 영향의 흔적이 발견된다.
중세 초반의 교회의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른바 신플라톤주의였다. 즉 플라톤의 이데아의 자리에 신을 갖다 놓은 것인데, 이것은 신이라는 보편이 존재하며 개별자들은 모두 이 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실재론적 주장이었다. "universaliis ante res" 즉 보편이 앞선다라는 주장으로 요약되는 실재론자
철학은 강대해진 교회의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성과는 보편논쟁에 있어서 보편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유명론이 승리하여 길고 긴 암흑의 시대 중세는 마침내 종말을 고하고 신 앞에 억눌렸던 인간의 가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