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진이 토월회의 귀국 2차 공연(1923년 9월)이 끝난 후, 동경 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백조」에 가담하면서 파스큘라 등장의 실마리가 된다. 「백조」는 김기진이 가담한 후 3호를 발행하고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면서, 박영희, 안석영, 석송, 이익상, 김기진, 김복진, 연학년 등이 새로운 동인을 구상
조직에 관계하고 있었다. 여기에 기폭 장치를 마련한 것이 동경 유학생 신분의 김기진이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유포된 신흥사회과학에 빠져든 다음 특히 계급주의를 지향한 『씨뿌리는 사람』을 탐닉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정신적인 동조자를 찾아 나서서 먼저 배재고보의 동창생인 박영희, 이상
카프(KAPF) 즉 ꡐ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ꡑ을 결성하는 데에 합의했으며 발기인은 김기진, 박영희, 이호, 김영팔, 이익상, 박용대, 이적효, 김온, 김복진, 소영 등이었다. KAPF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문인이었고 계급의식만 있으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ꡐ염군사ꡑ와는 다른 조직
운동이 정도를 걷지 못함을 비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반작가론은 동반자 작가의 활동을 계급적 진영의 지도하에 조직적 작품행동을 하도록 하자는 것으로서 그 안의 우익적 오류와 함께 극좌적 편향까지도 경계하고자 하는 데에 그 요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리얼리즘론은 한국프로문학론의 형
조직. <염군사>는 ‘우리들은 무산계급 해방을 위해 문화를 가지고 싸운다’라는 명확한 계급문학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문인이라기 보다는 사회운동을 문학으로 하겠다는 정치청년들로, 문예 동호인 성격의 집단이었다.
와 <파스큘라> 1923년 조직된 본격적인 문학가 조직. 박영희, 김기진, 김복진,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