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우리 민족 전체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판소리는 창자, 고수, 청중 모두가 삼위일체가 되어 극을 이끌어 나간다. 이는 서양의 극과는 다른 것으로 극의 생동감과 현장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으며, 한 사람 한사람이 판소리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가 있
판소리는 그 발생의 바탕이 되는 설화를 근간으로 요,무가, 공연 현장에서의 감흥을 위한 재담등 여러 문화적 요인들이 첨가되어 변화해온 적층적 문화형태라는 형성 과정을 가지고 있다.
19세기에 판소리는 양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전성기를 맞았는데, 19세기 전반기를'전기 8명창시대'라 하고,19세기
무가는 주술적인 기능ㅇ르 가지고 초자연적인 상상력에 의해 작품이 전개되나, 판소리는 청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부르는 흥행예술이며 보다 현실적인 성격을 가진 문학이다.
판소리가 흥행예술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시해야 할 특징이다. 판소리는 판소리 광대만 부른다. 광대가 아닌 사람도 부를
판소리 창자(唱者)이고, 그들은 전국에 두루 존재하였다. 그러나 무가의 선율이 육자배기 토리로 되었고 무가의 반주로 시나위가 연주되는 지역에서만 판소리명창이 배출될 수 있었다는 점에 따라 판소리의 음악적 측면은 호남의 무악(巫樂)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 사설을 구성하는 근원설화
명창이라고 하는 박유전, 김세종, 이날치, 정창업 등이 유명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는 송만갑, 이동백, 유성준, 정정렬 등이 이름나서 이른바, 5명창시대라고 불렀다. 이미 19세기에 판소리는 지금과 같이 전승되었고, 다섯 마당으로 정돈 되었다. 또, 같은 시기 판소리는 필사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