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회와 이들 ‘중견인물’을 통해 일제는 조선의 촌락까지 정치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농촌진흥운동은 조선 농촌 경제의 몰락을 배경으로 계획된 일종의 경제 운동이었다. 그렇기에 그 이면에 숨어있는 목적성을 제외한다면 물산장려운동과 일면 유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1930년대
사회 발전단계에 효과적으로 부응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법을 개정하여 노동조합의 설립을 용이하게 하고 노조의 조직형태를 자유롭게 하도록 하였으며 행정관청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으므로 노동조합 활동이 크게 신장되어 노사당사자의 자치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Ⅱ. 노동운동의
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었던 봉건적 요소를 척결하고 서구의 문물을 과감히 도입하고자 하였다. 개화 사상의 연원은 이용후생을 주장하던 북학사상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지만 청의 양무운동(洋務運動) 및 일본의 문명개화사상(文明開化思想), 그 중에서 특히 후자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화
사회주의’, ‘자본주의’ 등의 개념과 상치되는 개념이 아니며, 민족 고유의 상대성과 주체성을 올바로 세워나가는 것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근대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일제하 문화운동에서 주장했던 논리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다. 일제하 문화운동에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게 되었다. 빼앗긴 국권을 다시 찾는 것은 힘을 기르지 않는 한 매우 어려운 과제였으며, 당시 한국민족의 국권회복운동은 처음부터 장기전을 전제로 한 운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애국계몽운동에는 문화운동뿐만 아니라, 신교육구국운동, 언론계몽운동, 민족산업진흥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