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물론 이제까지 민족문학을 위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7,80년대에 민족문학론을 주도했던 백낙청 및 창작과 비평 그룹의 자기 갱신 노력도 만만치 않았고(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여타 진영의 비판적 발언도 숱하게 있었다. 특히 민족문학의 타당성에
1. 한설야
본명은 한병도(韓秉道), 필명은 만년설(萬年雪). 1900년 8월 3일 함남 함흥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함흥고보를 졸업했고, 1921년 일본에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1925년 <<조선문단>>에 단편 <그날 밤>, <동경>, <주림> 등으로 이광수의 추천을 받았으며, 1927년 카프에 가
Ⅰ. 서론(序論)
문단의 바깥인 북간도에서 일생을 보냈고 프로문학적인 성향을 지녔던 탓인지 소설가 강경애(姜敬愛)가 우리 문학계에서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강경애는 1930년대 식민지 현실을 그 누구보다 사실주의적으로 그린 여성 작가로서, 특히 장편『인간문
한설야, 오장환 등과의 교류를 통해 조선문학가 동맹에 가담하였다. 해방기 대전에는 세풍, 현대 신성 같은 잡지의 영향으로 아나키즘적 분위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박용래의 그에 얼마간 경도하기도 하지만 김남천, 한설야 등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내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