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운동의 중심지가 된 곳은 블라디보스톡(해삼위)이었다. 이곳에는 1893년에 이미 한인들의 밀집 거류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1907년에는 1만 400명의 한인들이 거주했는데 이는 블라디보스톡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게다가 이곳은 한국 국내는 물론 노령 연해주 각처에 형성된 한인사회와
'자본주의의 시대'에 <혁명의 시대>를 읽는다는 것
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함께 마침내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승리했다. 1988년, 평생을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열렬한 옹호자로 살았던 하이예크는 계획과 통제에 기반하는 사회주의를 인간의 '치명적 자만'이라 불렀다. 우연찮게도 소련의 붕괴 직
하지 않다. 전 세계로 전화를 걸고 이메일을 쓰는 데에는 시차조차 느껴지지 않으며, 이제 외국어 공부는 차라리 하나의 필수에 가까워졌다. 자기가 태어난 마을을 떠나지 않고 평생을 사는 사람이 태반이었던 전근대와 비교해볼 때, 가히 획기적인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어와 음식, 생활습관에
하지만 4월혁명이 제기한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의 실현 그 이상의 것이고 또 그것과 다른 것이다. 4월혁명은 “민주주의와 진정한 민족해방 실현을 위한 미완성의 민중혁명, 학생에 의한 대리혁명”이었다. 민중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진정한” 민주주의 또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민족주의와 동양의 민족주의는 다르고, 강대국의 팽창논리로서의 민족주의와 약소국의 저항적 민족주의와는 다르며,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여러 부문 중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하는가 등에 따라 다양한 개념의 조작화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다음의 민족주의 중에서는 어떤 공통된 부문이 있을까?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