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北派)를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다. 선조의 적자(嫡子)이며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그의 생모인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친정아버지 김제남(金悌男)이 주도하여 왕으로 옹립하려 하는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허위자백을 구실로 김제남을 죽이고, 당시 영의정이던 유영경(柳永慶
小北과 같은 당파를 일으켜 정치의 부패, 국력의 약화, 계급적 차별 등 國利民福을 도외시하는 사회현상을 유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당쟁의 근원은 宣祖 8년(1579) 척신 심의겸과 신진사대부 김효원 사이의 전랑 추천 문제에서 발생되었다. 전랑으로 추천된 김효원을 심의겸의 반대로 늦어지자 반감을
17세기는 양반지배체제가 확립되던 시기이다. 사림정치의 개막으로 중앙에 진출하여 권력을 소유하게 된 신대사족(臣大士族)과 정계진출에 실패하여 겨우 지위만 유지하는 한미사족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사족층 내부에서도 유력사족과 그렇지 못한 하층사족 · 이향사족은 배타적 관계에 놓여있었다
Ⅰ. 서론
사림파는 15세기의 사학파에 연원을 두고 형성되었다. 조선의 건국에 반대하여 은거한 길재에서 비롯되는 사학파의 전통은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으로 계승되었다. 사학파의 학풍은 소학과 가례를 중심으로 성리학 이념의 실천에 치중하는 것이었다. 또한 향촌의 중소지주층인 사학파들은 15
1) 주자성리학의 발달과 변질
(1) 발달
1> 배경
<1>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의 양립
<2> 서인과 노론의 당파를 주축으로 한 집권 세력이 주자성리학을 신봉
(2) 변질
1> 주자성리학은 다른 사상에 대해 더욱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을 나타내게 됨
2> 이기론·심성론 등의 이론적 연구가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