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부관참시되었다.
이들은 훈구 재상들을 거의 망라하는 것이었음
이외에 홍귀달 심원 이유녕 변형량 이수공 곽종번 박한주 강백진 최부 성중엄 이원 신징 심순문 강형 김천령 정인인 조지서 정성근 성경온 박은 조위 강겸 홍식 홍상 김처선 등이 피해를 입었는데 이들은 대다수가 사림이었다.
1. 들어가는 글
한국문학사상사에서 16세기는 특히 중요한 시기이다. 문학에 관한 사상을 문학 사상이라
하면 문학사상은 일정한 철학적 사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으며 오랫동안 유학이 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유학의 문학사상은 동질적인 것이 아니었고 계속 주목할 만한 역사적 변화를 가졌다. 이러
사화란 조선시대에 조신 및 선비들이 반대파에게 몰려 화를 입은 사건을 말한다.
조선 개국 이래 역대의 임금이 문치에 힘을 쓰고 유학을 장려했기 때문에 우수한 학자가 많이 배출되고, 선비사회, 즉 유림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그러나 세조∼성종 때에 이르러 그들 사이에 사상·감정·지역관계 등으로
Ⅰ. 비트와 레지스터
1. STATUS 레지스터
명령 실행후의 상태표시 레지스터(03h, 83h에 위치)
1) IRP
레지스터 선택 비트(PIC16C84에서는 필요 없음)
0이면 Bank 0, 1을 쓰고 1이면 Bank 2, 3을 쓴다.
2) RP1, RP0
레지스터 선택 비트(PIC16C84에서는 RP1필요 없음)
00이면 Bank 0, 01이면 Bank 1, 10이면 Bank 2, 11이면 Ban
*사화
사화란 조선시대에 조신 및 선비들이 반대파에게 몰려 화를 입은 사건을 말한다.
조선 개국 이래 역대의 임금이 문치에 힘을 쓰고 유학을 장려했기 때문에 우수한 학자가 많이 배출되고, 선비사회, 즉 유림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그러나 세조∼성종 때에 이르러 그들 사이에 사상·감정·지역관
성종 21권, 3년(1472 임진 / 명 성화(成化) 8년) 8월 16일(경진) 3번째 기사 대사헌 권감·대사간 성준 등이 오백창에게 죄를 더하기를 청하다
司憲府大司憲權瑊等、司諫院大司諫成俊等來啓曰: “吳伯昌之罪非輕, 而只收告身, 爲惡者何所懲乎? 請加罪。 且《實錄》奉安使, 今日拜辭, 全州史庫時未造成,
1) 사화의 의미
사화란 사림(史林)의 화(禍)를 줄인 말이다.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은 문을 숭상하고 유학을 장려함으로써 유림이 중심이 된 사회였으나 이들은 각자의 사상과 감정, 또는 지연 등을 연고로 하여 파벌을 형성했으며 서로 논쟁하고 대립, 투쟁하면서 서로를 반역으로 몰아 목숨까지
Ⅰ. 서 론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가 ‘조선시대의 역대사건 및 유명인사’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양이 방대하였다. 조선시대를 통털어서 사건을 정리한다는 것은 무리이고 그래서 어느 한 사건을 정하여 그것에 관하여 심층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우선 주제로 정한 사건은 ‘사화’이다.
◆사림의 등장과 성장
사림이란 원래 사대부의 무리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고려 말 조선 초기에 문․무 양반 관료와 그 일족, 그리고 벼슬하지 않은 선비들까지 포함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세조가 정권을 잡은 이후 성종에 이르는 18년 동안 250명의 공신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훈구파(勳舊派)&
'사림’은 어의상으로 ‘사족’(士族)·‘사류’(士類) 따위와 같이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의 집단’이라는 의미이다.
사림이라는 용어는 고려 후기의 사회변화와 함께 나타났다. 고려는 귀족 중심의 성향이 강한 사회여서 소수의 문벌귀족이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정치사회적으로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