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운 등.
2. 북한지역
(1) 소련군의 점령정책과 북조선 분국의 결성
- 1945년 8월말 북한 전역 점령.
- 소련군정 실시. 행정권을 점차 인민위원회로 이양.
- 김일성 등 항일무장투쟁 세력 귀국.
- 1945년 10월 10일 열성자대회,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설치.
--> 1946년 북조선로동당(북로당)으로 개편.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를 설립하고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결성을 지원하였다. 이어 1946년 2월 소련은 중앙행정기관의 모태가 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사실상의 정부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1947년 2월에 창립된 입법기관인 북조선인민회의는 북조선인민위원회 설치, 헌법초안 작
위원회 평남지부와 현준혁을 위시한 공산계의 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회 등이 그 대표적인 자치조직이 었다.
▷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상기 자치조직들을 소비에트정권기관 형태인 인민(정치)위원회로 통합시켰다.
▷ 소련군은 표면상 북한의 자생조직을 인정하고 내부적으로 소련군이 원하는 대
Ⅰ. 서론
북한에 있어 러시아 정치 형성의 급변을 나타내고 있는 중요한 발표된 출처로는 “러북 관계에 관한 국회청문회” 라는 자료가 있다. 청문회 발기자는 M. 미뜨로파노프(러시아 자유민주당 프락치)가 선도하고 있는 지정학 국회위원회였다. 청문회에는 M. 미뜨로파노프, 러시아 외무부 아시아
우리에게 ‘백석’이란 시인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향토성 짙은 고향을 모던하게 그려낼 줄 아는 시인, 백석.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30,40년대의 활동만을 가지고 판단한 것일 뿐 그 이후의 그의 작품 활동까지도 이렇게 단정짓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백석의 문학이
인민위원회 연합회의가 개최되었고, 결과 각 지방의 인민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이북 5도의 행정이 통일시키고 중앙 집중적인 체계가 만들어진다. 이 기구는 10월 28일 '북조선5도행정국'으로 개편되었다. 이것은 북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향한 태아적 정부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조직들은 모두 공산
인민공화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소집 요강 및 중앙인민위원회의 규정
(2) 민주주의민족전선 및 지방선거 행동강령의 규정안
(3) 미군정의 규정
(4) 미소공동위원회 결의 6호 질의에 대한 임시정부수립대책협의회 답신
(5) 위 질의에 대한 북조선노동당 답신
(6) 위 질의에 대한 민전의 답신
(7) 남
임시정부의 김구 역시 임시정부의 수장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입국을 하게 된다. 김구는 한반도에 입국을 하고나서 과도정부를 수립하고자 비상정치회의를 열어 이를 기반으로 비상국민회의를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비상국민회의에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위원회도 참여한다. 한국민족주의와 남북관
인민에 고함’이라는 포고를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인이 주도하는 행정부를 구성했다. 소련은 그에 앞서 1945년 8월 6일 북한에 진입, 소비에트 체제를 지지하는 조직적 기반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1946년 2월에는 북한에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설립하였다. 이렇게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서 조직적 기반
위원회의 내부갈등이 나타남. 특히 박헌영 등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의 세력 이 강해짐
→그 결과 안재홍 등 중도 우파들이 이탈함
①-1 조선인민공화국
건국준비위원회는 미군의 진주 소식에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1945.9)
지방의 치안대 지부도 지방인민위원회로 개편
→임시정부계열과 우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