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의 삼국사기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준 누구나가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고 중요한 역사서입니다. 대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김부식이 지었다는 것과 인종의 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삼국사기가 나오기까지 의 과정과 그 역사적 의미를 조사해보았습니다
1.삼국사기 편찬사
(1)삼국사기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사료이다. 왜냐하면 현재 남아있는 고대사 관련 문헌의 수가 굉장히 적기에 상대적인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삼국사기는 좀더 객관적으로 다루어 볼 필요성이 있다. 삼국사기의 내ㆍ외부적 상황을 살펴봄과 동시에 삼국사기
삼국사기를 저술하게 된 배경이 될 수 있었다. 즉 김부식은 삼국사기의 편찬을 통해 이전시대의 문화를 정리하는 동시에 묘청의난 이후 약화된 왕권을 강화시킬 바탕을 마련하였고 당시 사회모순에 대한 간접적인 현실비판을 꾀하였던 것이다. 그가 정계에서 크게 활약한 시기는 60대 이후였다. 묘청의
서론
『삼국사기』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역사학자들 및 세인들에게 사대적이라는 이유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여기서 기존의 『삼국사기』에 대한 관점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객관적인 시각에서 평가해 보고
2. 三國史記에 대한 부정적 평가
삼국사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삼국사기가 지어진 이래로 계속되고 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과 일연의 삼국유사도 삼국사기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조선시대 사가에 의해서 또 식민사관과 민족주의사관 모두에게서 비판받았지만 비판의
Ⅰ. 삼국사기
1. 들어가는 말
삼국사기는 김부식(金富軾)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1145년(인종 23)경에 편찬한 삼국시대의 정사이다. 다음에서는 삼국사기의 편찬과정과 삼국사기에 나타난 본기(本紀)와 열전(列傳), 지(志) 등을 분석해 봄으로써 그 사료적 가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삼국
Ⅰ. 우로(于老)는 누구인가?
신라 사람으로 석씨계의 10대 내해이사금의 아들이자 16대인 흘해이사금의 아버지이다. 삼국사기 권45 열전에 그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으며『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비슷한 기록으로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전쟁에 매우 능하였다고 전해지며 일생동안 5번의
조공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삼국사기에서는 총 3회로 백제 전지왕 5년인 409년에는 왜국의 사신이 야명주를 보냈으며, 14년인 418년에는 사신을 왜국으로 보내 백면 10필을 보냈다. 하지만 신라 경덕왕 원년인 742년에는 일본국 사신이 조공하였으나 받지 않고 보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