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문장의 한국문학사에서 위상은 매우 높다. 일본이 대동아 전쟁과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위하여 광분하던 때, 꺼져가는 한국적 문화를 지키려고 매달렸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어교육을 봉쇄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마저도 폐간된 현실 속에서 문장 편집진들은 최
Ⅱ. 본론
1. 고전의 가치에 대한 천작
1) 일제 강점 말기의 시대적 배경
1930년 말은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이 생존의 방향마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대기만 하던 시기였다. 1930년대의 초의 카프의 탄압과 해체를 경험하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내적으로 위축되었는데, 소위 순수시운동과 산
잡지 문장은 ≪인문평론≫과 함께 문학지의 대표적 수준의 잡지로 전 문단인을 망라하였다. 소설에 65명, 시에 46명, 시조에 10명, 희곡·시나리오에 8명, 수필에 183명, 평론에 59명이 등장한다. 친일적인 색채가 거의 없는 순수문학을 지향하였다. 국문학 고전을 수록하여 민족 문학 유산을 옹호 전파하였
과연 무슨 말이며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가치관과 의식인지, 아니면 일부 학자들의 주장일 따름인지는 분명하게 더듬어보아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고전의 가치와 잡지 문장파 예술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다.
Ⅰ. 1910년대의 학우회
1881년 6월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이었던 유길준, 류정수, 윤치호 등 3명이 慶應義塾과 同人社에 입학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일본유학생사회는 1910년대에 ‘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東京朝鮮留學生學友會, 이하 학우회)’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결속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
과연 무슨 말이며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가치관과 의식인지, 아니면 일부 학자들의 주장일 따름인지는 분명하게 더듬어보아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고전의 가치와 잡지 문장파 예술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다.
상태에서 그가 1953년 북한에서 사망할 때까지 이념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그의 작품들이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것은 우리 시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정지용 시인을 중심으로 고전의 가치와 잡지 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다.
좋은 문학 작품의 표본이다. 이런 고전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조상의 사상과 정서와 소망 등이 담긴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고전’의 가치에 대해 깊이 천착했던 잡지 문장파 예술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에 대해 서술하기로 하자.
⑶ 개화를 촉구하기 위한 계몽적 성격을 띤 제1기를 뒤이어 등장하는 것이 1910~19년 사이의 일제의 총독통치에 의한 무단정치시대(武斷政治時代)이다. 이에 통감부 시대인 1907년에 공포된 신문지법(新聞紙法)과 1909년에 공포된 출판법에 의하여 이중 삼중 으로 탄압을 받게 된 한국의 잡지는 거세(去勢)
잡지(盛京雜識)
성경잡지(盛京雜識)는 열하일기 제2권으로 7월 10일부터 7월 14일까지 모두 닷새 동안의 기록이다.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까지 5일간의 기록으로 3백 27리길의 여정을 다루었는데 성경(盛京)은 요양에서 십리하일(十里河日), 백탑포(白塔鋪)를 거치면 당도하는 지역으로 소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