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기원전 4세기 전반에 태어났다. 어릴 때 이야기로 맹모삼천 이나 단기지계의 가르침이 있다. 젊었을 때 노나 라로 유학하여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생에게 배웠다. 뒤에 제자들을 이끌고 후거수십승, 종자수백인 이라는 대부대를 이루어 양나라 혜왕, 제나라 선왕, 추나라 목공, 등나라 문공
- 사의 등장 배경 (전국시대의 변화)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다른 변화의 시기 였다. 진(秦)이 해체되고 150여개 국(國)이 사라졌으며, 대부가 제후를 살해 하는 일들이 발생하였다.
춘추시대는 전국시대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으나 주 황실을 기점으로 한 족적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 제자백가[諸子百家] : 제자란 여러 학자들이란 뜻이고, 백가란 수많은 학파들을 의미한다. 곧 수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펼쳤던 것을 나타낸다.
의 한 사람.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생에게서 배움.
어머니는 현모로 알려
고자의 ‘성무선무불선설’을 비롯해서 성이 착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다는 설, 또는 사람의 성은 착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 될 수도 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이론들을 배격하고 성선설을 고집함으로써 인간은 마땅히 선의 본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인의예지의 사단을 확충시
1. 생애
맹자는 BC. 372년에 태어나 BC289년에 죽었다. 맹자가 살던 시기는 전국시대로서 이미 주나라 왕실이 붕괴되고, 주나라 예악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물질지향적인 시대이며, 매우 혼란한 시대였다. 맹자의 가문은 원래 노나라 귀족 출신이였다. 그러나 노나라가 쇠락해지고, 가문이 몰락하면
사칠 논쟁을 통한 조선 사회의 가치관 분석
1. 사단칠정론 [四端七情論]
조선시대의 석학인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주장한 인생관의 논리적 학설.
사단(四端)이란 맹자(孟子)가 실천도덕의 근간으로 삼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하며,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맹자는 이 네 가지의 마음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구현할 수 있는 네 가지의 실마리인 사단(四端)으로 규정하였고, 사단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맹자』의 「공손추장구상」편에 나오는 다음의 글을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시비지심’이 모두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갖추어져 있음을 지적하고, ‘측은지심’은 ‘인’이고 ‘수오지심’은 ‘의’이며 ‘사양지심’은 ‘예’이고 ‘시비지심’은 ‘지’라고 말하면서 ‘단서(실마리)’를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맹자가 ‘측은지심’과 ‘수오지심’과 ‘사양지심’과 ‘시
시비지심 등이 사단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또한 인, 의, 예, 지의 실마리(단서)가 되기도 한다.
칠정(七情)은 사단(四端)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다. ‘예기(禮記)’에서 처음으로 다뤄진 이 개념은 인간의 7가지 감정을 말하며, 완전한 선(善)인 사단(四端)과는 달리 칠정(七情) 은 유선유악(有善有惡)으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가리키며, 칠정(七情)은 <예기(禮記)>와 자사(子思)의 <중용(中庸)>에 나오는 인간의 7가지 감정인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말한다. 사단론은 이미 맹자가 밝힌 바이나(인간이 덕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 사단을 확충해야 한다고 함). 조선 때 이황은 여기에다 칠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