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 205호>
소재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
시대
고구려
종류/분류
비석
크기
높이 203cm, 폭 55cm, 두께 33cm
공식 명칭은 ‘충주 고구려비’로 국내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비이다.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다듬어 4면에 모두 글자를 새겼다. 1979년 발견 당시부터 비면이 심하게
1. 머리말
공주시는 충청남도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시이며, 작은 분지지형을 이루고 있는데, 남쪽에 주미산(舟尾山), 동쪽에 봉화대와 공산성, 서쪽에 일락산, 봉황산 및 정지산(艇止山)이 있다. 그리고 제민천이 남쪽의 주미산에서 발원하여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면서 시가를 동서로 양분하고 금강
비상은 현재 비상(빗돌)만 남아 있음
(비는 대게 비상(빗돌) , 대좌 (받침돌) , 개석 (덮개돌) 로 구성됨)
* 석상과 비상에 대하여
- 석상은 돌판에 불상을 조각한 것이고 비상은 비석 모양의 석상에 명문을 새긴 것
- 중궁의 경우에는 다수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례가 드물다.
3. 아미타불 명문에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
- 신라의 삼국통일을
진정한 통일이라 볼수 있는가-
목 차
서론
계유명 아미타 삼존 불비상에 대하여
본론
불비상 명문 해석순서에 대하여
명문의 해석
불비상에 나타난 관등
비문에 나타난 불교 사상의 변화
불교 안에서 정신적 통일을 이뤘는가
계유명아미타
삼존불비상의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
목차
소개
내용 및 명문 해석
시대적 의미
생각해 볼 문제
비암사
불상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석상
미륵보살반가석상
무슨 뜻 인가?
계유명
계유(癸酉) : 673년
명(銘) : 새기다, 기록하다.
아미타삼존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불비상(佛碑像)
佛像 + 碑
다른 샤만의 특유한 엑스타시를 “이승에서 저승에로의 여행”이 가능한 체험, 곧 천상에로의 비상이나 지하에로의 하강이 실현되며, 그 때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이 특징이라 설명한다. 샤마니즘=접신술이라 정의한다. ( 미르치아 엘리아데,『샤마니즘(1945)』,(서울:까치,이윤기 옮김,1992). p.24).
사람들이 적혀있다.
고려 광종때 준풍3년(962) 주성 하였다.
청주 남문로 위치
2. ‘계유’ 가 새겨진 아미타불
비석모양에 사면에 불상의 모습을 새기고 앞면에는 부처와 보살, 신장상등 9존불을 배치함.
통일신라(673년) 연기 비암사 / 신550
국보 106호
높이 42.5cm
청주 국립 박물관 소장.
비상의 진체중도라 하였는데 이를 후래에 진공사상이라고 보아 왔고 묘유란 공의 근본이 철저히 공만이 아니므로 진공이라 표현한 것처럼 유라 해도 상유가 아니므로 묘유라 표현했다. 또한 호법은 상유가 아닌 묘유를 속체중도라 하였는데 이를 후래에 묘유사상이라고 보았다. 즉 진공과 묘유를 가지
비상은 호류지 삼존상의 계보추정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여기서 호류지 삼존상은 일본 나라의 호류지 금장의 석가삼존상으로 아스카조각을 주도했던 도리 양식의 대표작이다.
통일신라 초기인 673년에 백제 유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이었던 백제 조각양식으로써 조성한 귀중한 예로, 따라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의경지에 들어서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6년의 고행에도 득도하지 못하였던 싯다르타는 마침내 35세 때 보리수 아래 단정히 앉아 해탈을 할 수 있었으며, 며칠이 지난 뒤 큰 깨달음을 자각하고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루었다. 그로부터 40여 년 동안 항하(恒河)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