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00년대 : 이산가족교류 제도화 및 민간차원 교류 확대
(1)‘6·15 공동선언’과 이산가족 문제 돌파구 마련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최고당국자가 만났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과 그 결실인 6·15남북공동선언은 민족사적인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
행사뿐 아니라 통일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통일한국의 비전을 품고 우리에 앞서 통일을 이루어낸 나라들의 교훈을 통해 통일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이와 함께 통일의 부담은 결국 남한사회가
Ⅰ. 서론
오는 28∼30일 평양에서 열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경제협력 확대 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상하면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북방경제' 구상이 어느 정도 구체화될 지 주목된다. 정부는 8일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하면서 "남북경협 및 교류협력 관계를 양적.질적으로 한 단계 진전
Ⅰ. 남북교류와 문화예술교류
1. 음악
1985년 제1차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시 우리 대중가수들이 평양에서 공연한 바 있으며, 제3국 개최행사로서는 1991년 남측 중앙국립관현악단 52명과 북측 평양음악무용단 등 60명이 참가한 통일예술제(’92.8.17~18, 사할린)가 있다.
1990년의
베를린에서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 및 성묘 준비를 협의하기 위해 ‘남북적십자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이산가족 고령화 등을 감안한다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은 매우 시급한 문제다. ‘남북군사당국회담’ 역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수위 등을 고려한다면 조속히 열려야 한다.
Ⅰ. 서 론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미ㆍ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으로 인해 양분되었다. 이후 북한의 도발에 의한 6ㆍ25전쟁으로 남북한간에는 상호대립과 갈등이 증대되고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남북한 간의 심리적 분단도 고착화되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주변국들의
이산가족 문제부터, 남북 냉전체제, 남한 내 이념갈등에 이르기까지 분단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난제로 꼽히고 있다. 6.25 전쟁 이후 50년 가까이 냉전을 유지하던 남한과 북한은 김대중 정부부터 시작된 햇볕정책으로 인해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지만 10년간의 보수정
Ⅰ. 서 론
남북한의 6*25전쟁이란 동존상잔의 비국을 거쳐 휴전선이 생기게 되어 70년이 가까이 이산가족이 생기게 되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있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깊게 심어주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몇 십 년만에 만나, 어릴 때 소년의 모습에서 80대, 90대가 된
행사가 아니라 남북관계 제도화·정례화 등에 실질적 진전을 가져오는 회담이 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전문가들의 의견과 제안을 듣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 기획을 마련했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한 정상이 재차 만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해방 이후 북한의 도발>
67년~69년 북한은 남한으로부터 미군철수를 유도하기 위하여 폭력적인 투쟁을 전개
68년 1월 1.21사태(청와대 기습부대 침투)와 미국의 푸에블로 정보함 납치사건
12월 12월 2일 울진과 삼척에 북한의 무장간첩 침입
69년 4월 미국정보 정찰기 EC-121의 피랍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