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의 시를 집중적으로 해부하여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이 빚어내고 있는 아픔을 발표하려고 한다.
오늘 발표를 통하여 사랑을 막 시작하고, 한창 그 사랑이 무르익게 되어 투명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꿈을 노래하다가 이별을 겪게 되는 그 순간까지 함께 살펴보며 마치 사랑의 총체적인 과정을 겪
李商隱 <夜雨奇北>
◆작가: 李商隱(813~858)
자가 의산(義山)이며 호는 옥계생(玉溪生)으로 회주(懷州) 하내(河內)지금의 하남 심양(沁陽)사람이다. 젊어서 우승유당(牛僧儒黨)의 영고초(令孤楚)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막부순관(幕府巡官)이 되었다가 영고초의 아들 영고도(令孤淘)의 추천을 받고 이덕
육조 이후 과도기적인 통일 왕조 수를 거쳐 새로운 제국을 이룬 당대의 시는 고병高棅의 [당시품휘唐詩品彙]에서 초, 성, 중, 만당으로 나눈 대로 시기별로 290년간 다양하고도 풍부한 발전을 하였다. 당초의 시풍은 심전기(약656-714), 송지문(약656-712) 및 초당사걸 등이 주도하며 오칠언 절구와 율시의 형
-이백시의 복고적 경향-
이백은 촉의 선배인 진자앙(陳子昻)을 흠모하여 시의 풍격에 있어서 육조의 기려함을 제거하고 복고적인 문학을 계승하려 하였는데 그의 <古風> 59수는 바로 진자앙의 <感遇詩>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古風>시 첫머리 가운데서 “대아의 작품이 오랫동안 지어지지 않으니, 내
1. 晩唐의 정치&사회적 배경
晩唐의 시기는 敬宗 寶歷 元年(825)-당 왕조의 멸망까지 80여 년의 시간인데 이는 許渾&杜牧&李商隱&溫庭筠 등 예술적 방면의 성취가 높았던 시인들이 활동했던 때이다. 晩唐 시기는 나라가 전체적으로 쇠약해지고 가라앉는 시대로서 이에 편승하는 유미주의와 형식주의가
1. 전지(剪纸)의 역사
언제? 진(晉)대부터~
금박지를 조각하니 초나라의 풍습이요, 전지로 사람을 만드니 진(晉)나라 기풍이로구나.
-당나라 이상은(李商隱), 『인일(人日)』
• 어떻게? 대를 이어서!
전지, 바느질, 자수 등은 전통적인 여성의 덕목
대부분 여성이 주축이 되어윗대의 어른이나, 자
이상은(李商隱)같은 사람도 신라주를 찬양하는 시를 읊었다고 하니 이미 삼국시대에 곡식을 가지고 만든 곡주에도 막걸리가 아닌 청주가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의 고사기(古史記)에 보면 응신천황(應神天皇,AD27~312)때 백제의 인번이란 사람이 새로운 방법으로 미주(美酒)를 빚었기 때문에 그를 주신(酒神
이상은(李商隱)과 함께 유명하여 「소이두(小李杜)」라 하였다가 후세 사람들이 두보(杜甫)와 구별 짓기 위해 「소두(小杜)」라 불렀다.
『전당시』에 520여수가 전하며 주석본으로는 청나라 때 풍집오(馮集梧)가 『번천시집주(樊川詩集注)』를 편찬했고, 배정한(裴廷翰)이 두목의 시문을 정리하여 편집
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오히려 일반 백성들의 고난은 더욱더 가중되었고, 골품제도의 구분은 여전했으며 육두품 이하는 사회적 진출에 제한이 있었다. 뛰어난 재능이나 나라를 구할만한 능력을 지녔다 해도 그들의 능력껏 펼칠 수 없었으며 진골 지배체제를 밑에서 뒷받침해 주는 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