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란 국왕의 명의로 일본의 막부장군幕府將軍에게 보낸 공적인 외교사절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나타난 것은 1413년(태종 13)이었으나, 사행使行의 정사正使 박분朴賁이 중도에 병이나 중지되었다. 그 뒤 1428년(세종 10) 통신사란 명칭으로 정사正使
Ⅰ.서론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가장 멀게만 느껴지는 한국인으로서 일본인에 대한 감정은 한일관계에서 간단히 정리 될 수 없는 그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일본의 침략 속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조선통신사라는 교류의 끈 놓지 않았고, 13세기 체제 이후 서구 열강의 급진
1)통신사의 정의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는 '일본에 파견된 조선 국사의 명칭',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일본 바쿠후[幕府]의 쇼군에게 보낸 공식 사절단‘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통신사의 여러 취지는 무로마치[室町] 쇼군[将軍]으로부터의 사절과 국서에 대한 답례로서 1375년에 아시
조선국왕이 일본의 신하인 도쿠가와 장군과 대등례를 나누는 것에 대한 비판의식이 일어나게 되었다.
1811년 신미통신사를 역지통신이라 일컫는데 왜 1811년에 거행되었으며 또 그것은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일까. 널리 알려진 것처럼 역지통신을 朝鮮朝廷과 도쿠가와 막부의 재정긴축정책의 일
Ⅰ.조․일관계 대외인식
1.국교재개와 피로인
1592년 4월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1598년 11월까지 약 7년여에 걸쳐 지속되었다. 물론 7년 동안 계속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의 침략을 받은 조선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전후 조선이
Ⅰ. 삼국시대 한∙일 음식문화교류
<술과 누룩>
[고사기]
"술의 양조에 관해서는 오진 천황 시대, 백제에서 니호, 다른 이름으로 스스코리(須須許理)라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와서 좋은 술을 제조해서 헌상했다. 천황은 이 술에 취해 기분이 매우 좋아서, '스스코리가 빚은 향기로운 술에 이 몸이
일본의 술에 대한 기록
"술의 양조에 관해서는 오진 천황 시대, 백제에서 니호, 다른 이름으로 스스코리(須須許理)라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와서 좋은 술을 제조해서 헌상했다. 천황은 이 술에 취해 기분이 매우 좋아서, '스스코리가 빚은 향기로운 술에 이 몸이 취했도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술, 미주(
조선통신사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논란은 과연 통신사는 朝貢使인가 하는 점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사학계에서는 침략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조선통신사를 조공사로 여기는 관점을 통설화 시켰다. 현대에 와서는 이런 관점은 많이 순화되어 한국 사학계와의 연계연구까지 이루어질 정도로
관광은 인류의 역사와 그 발생을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으나, 현대적 의미에서의 관광은 로마시대로부터 생성되었다. 부의 축적과 소득의 증대를 바탕으로 가치관의 다양화, 여가 시 간의 증가, 이질적 문화에 대한 호기심, 교통수단의 발달 등으로 국제관광은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현대적 의미의 국
통신사이다. 통신사는 수차례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며 다양한 활동과 역할을 수행하였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통신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조선)통신사(通信使)'란 무엇인가?
통신사의 명칭은 조선시대에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는데, '고려사절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