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 허난설헌의 생애와 문학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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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사] 허난설헌의 생애와 문학 세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허난설헌의 생애와 문학 세계
목차
Ⅰ. 들어가며
Ⅱ. 허난설헌의 삶
1. 가정환경
2. 결혼생활
3. 세 가지 한
Ⅲ. 작품세계
1. 주체적 자아
2. 선계를 향한 꿈
3. 인식
4. 위상
5. 문학사적 의의
Ⅳ. 마치며
참고문헌
Ⅰ. 들어가며
여성이 국가의 원수를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성 평등 순위는 136개국 중 111위에 머물러 있다. 이는 페미니즘이 갖는 본질과 그것이 수행해야 할 과제의 중요성을 여전히 강조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을 문학사에 적용시키고자 여성문학의 뿌리를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한다. 여성의 입장과 관점에서 여성의 삶을 주제로 삼아 자아의 갈등과 추구의 문제를 여성의 감수성과 문학적 언어로 섬세하게 창출한 것을 여성문학이라고 한다. 그 당시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가진 여성작가와 그 작품에 나타난 가치와 특성을 살피며 자주성을 통한 페미니스트적인 면모를 발견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여성 문학적 전통과 여성 문화적 유산을 되짚어보고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자의식을 찾고 싶다.
조선시대는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남성중심사회의 가부장적 질서가 확립되면서 여성의 삶은 갈수록 억압받았다. 전통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위치의 존재가 아닌 남성에게 종속된 소유물로 인식되었다.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갖지 못했으며 남성과의 결혼을 통한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서의 지위만 주어졌다. 그러니 활동 영역이 가정으로 제한되었고 학문이나 사회활동도 당연히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는 훌륭한 여류 문재들의 등장이 두드러진 양상을 보인다. 사임당 신씨와 황진이, 그리고 허난설헌이 그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들은 여성 특유의 감수성이 뛰어난 작품세계를 통하여 시문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대단한 작가들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사임당이 예술가나 문학가로서의 면모보다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더 알려져 있다. 황진이 역시 뛰어난 문학성을 가진 여성이라기보다는 기생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사실 이들에 비해 허난설헌의 존재감은 너무나도 미미하다. 허난설헌은 현재 우리에게 그저 홍길동전을 지은 천재 문인 허균의 누이라는 인상뿐이다. 이는 그 당시 시대가 원하는 어진 며느리, 순종적인 아내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었기에 천부적인 학문적 재능과 예술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이 그녀를 죽은 역사 속에서 불러내 그의 빛나는 위상과 업적을 기리고 싶다.
허난설헌은 여성 역사에 자긍심의 횃불을 밝히며 불꽃같이 살다갔다. 난설헌은 타고난 재주와 이를 계발할 수 있었던 보기 드물게 훌륭한 가문의 선구적인 교육, 그리고 시대상황적 배경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더욱 돋보일 수 있는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허난설헌은 봉건사회의 모순된 여성윤리 속에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동시에 남성과 대등하게 조화를 이루는 삶과 문학세계를 자유롭게 지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한 치부를 자기 개인만의 내면적 한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사회 정치적 구조의 문제와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더욱이 주목받아야 마땅하다. 그녀의 문학은 현실의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해 의식적 비판이 수반되고 있으며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여성의 시각으로 표출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난설헌을 조선 최고의 페미니스트로 보게 한다.
그래서 허난설헌의 시는 여타의 다른 여성시인들의 작품과는 너무나 상이하다. 조선의 여성들이 대개 사랑의 감정을 읊거나, 이별의 정한, 자식들에게 주는 교훈, 자연물을 보며 지은 서정시로 일관했을 때 난설헌은 가정·사회·정치·종교를 아우르는 다양한 영역을 다채롭게 시로 풀어냈다. 그리하여 그녀의 작품이 중국과 일본을 넘나들었고 이미 최초의 한류를 이끈 선구자로 칭송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조선을 풍미하고 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시인으로서, 암울했던 유교 봉건사회의 평범한 아녀자로 갇혀 살기엔 그의 정신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자신의 세계와 자유를 갈망하고 추구했다. 어떻게 보면 유교사회라는 시대적 한계가 오히려 그녀를 더욱 단단해지게 하고 시대를 초월할 수 있게 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스물일곱 나이에 꽃잎이 지듯 짧고 굵은 삶을 살다 간 비운의 천재여류시인의 삶과 문학을 중심으로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의 의지와 억압받는 시대상황 속에서 자기존재의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발산했던 선구적 여인 허난설헌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Ⅱ. 허난설헌의 삶
1. 가정환경
허난설헌의 본명은 허초희許楚姬로, 난설헌蘭雪軒은 그녀의 호이다. 당시 조선의 여성들이 거의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지 못하였던 데 비해 난설헌이 ‘초희’라는 어엿한 이름을 가진 것을 보면 그녀의 집안은 여타의 가문에 비해 개방적인 가풍을 지닌 것을 알 수 있다. 난설헌은 고려 말의 재상 문경공 허공의 후손 허엽과 둘째 부인 사이에서의 소생이다. 초당 허엽은 서평군 한숙창의 딸인 청주 한씨와 결혼하여 맏아들 허성과 두 딸을 낳았으나 첫째 부인 한씨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초당과 재혼한 두 번째 아내는 예조참판 김광철의 딸로 허봉과 허난설헌 그리고 막내 허균을 낳았다. 전처의 자식이나 사위들이 유학에 전념한 학자나 관리들이라면, 김씨 부인이 낳은 자녀들을 자유분방한 감수성의 예술가적인 소질을 지녔다. 그래서 모두들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일찍 죽었던 것 같다.
허씨 가문은 조선에서 알아주는 당대 최고 가문으로서 높은 학문과 문장으로 부러움을 샀고, 요직을 차지하는 그야말로 으뜸 집안이었다. 아버지 허엽은 청렴결백한 대학자로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며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았다. 허엽은 퇴계이황과 화담 서경덕으로부터 글을 배웠고, 화담의 도가사상을 섭렵했다. 그래서 난설헌도 화담선생의 도가사상을 저절로 물려받았고 하늘에 신선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봉건 유교에 구속되기보다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발산하려는 의식을 보이던 허씨 일가는 비록 당대인으로부터 용납되지 못하였으나, 오히려 허난설헌의 문학적인 성취도를 높여 한국 한시사의 한 획을 긋는 여류 시인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