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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AND 간행물명 : 백제연구612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백제(百濟)의 가야(加耶) 진출(進出)과 "사비회의(泗?會議)"
김병남 ( Byung Nam Kim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2] 제55권 251~272페이지(총22페이지)
聖王 시기 百濟는 서기 530년대 安羅 걸탁성에 진출하여 가야 지역에서의 우위를 확보하였다. 이는 加耶 諸國뿐만 아니라 高句麗, 新羅 그리고 倭國에게도 파장을 미치는 심각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국내적 정치 상황으로 인해 백제의 가야 진출에 대한 견제나 대응 등의 별다른 조치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백제 또한 고구려의 혼란을 이용한 공격, 사비 천도 등 국내·외적인 대처로 가야 지역에 좀 더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였는데, 이것이 서기 531년 3월의 안라 걸탁성 진출 이후 서기 541년 4월의 1차 ``사비회의`` 개최 직전까지 가야 제국이 정치적 자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하나의 배경이다. 하지만 고구려를 공격한 우산성 전투(540)가 실패하자 백제 단독으로 고구려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고, 다시 고구려 공격을...
TAG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사비회의, Goguryeo, Baekje, Shilla, Gaya, Conference of Sabi
백제(百濟)의 서남해(西南海) 도서지역(島嶼地域) 진출과 해상교통로 장악
문안식 ( An Sik Moon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2] 제55권 273~297페이지(총25페이지)
백제의 서남해지역 진출은 근초고왕의 마한 잔여세력에 대한 경략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백제의 전남지역 지배는 집권층 사이의 내분이 격화되고,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밀리면서 약화되어 갔다. 웅진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이르면 사실상 종식되고, 백제의 쇠퇴를 틈타 가야와 신라 및 왜국이 서남해 도서와 연안지역으로 진출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들의 영향은 나주 영동리고분, 영암 옥야리고분, 해남 만의총 3호분, 담양 서옥고분, 신안 안좌도 배널리 3호분 등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확인된다. 백제의 영향력을 벗어나 자활을 추구하던 서남해지역의 토착세력은 동성왕의 무진주 親征 이후에도 재지사회의 유력자로 계속 군림하였다. 그러나 백제가 6세기 중엽에 이르러 方郡城制를 실시하고 직접지배를 도모하면서 서남해지역의 토착사회는 변화가 일어났다. 백제는 서남해 도서지역을 통...
TAG 배널리 3호분, 방군성제, 方郡城制, 남해만, 南海灣, 대중교섭, 對中交涉, 아차산군, 阿次山郡, 인진도군, 因珍島郡, 군성, 郡城, Namhae Bay, Baenulri Tumulus no.3[배널리 3호분], a Local control system named Banggungsungje, diplomatic networks[대외관계, 對外關係], counties named Achasangun, counties named Injindogun, Gun
일본(日本) 출토(出土) 백제(百濟)(계(系))토기(土器): 출현(出現)과 변천(變遷)
土田純子 ( Tsuchida Junko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1] 제54권 1~81페이지(총81페이지)
본고에서는 일본 출토 백제(계)토기 연구에 대한 성과를 집성한 후 공반된 須惠器의 편년을 통해 백제토기 편년의 흐름을 살펴보려고 시도하였다. 또한 백제(계)토기의 반입지를 추정함으로써 언제, 어떤 지역 집단과 교류했는지 검토한 후 일본 출토 백제(계)토기의 추이와 역사적 의의를 추출하였다. 일본에서는 2세기 후반대 마한토기가 처음으로 출토되었고 4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양이부호를 비롯한 이중구연토기, 견부압날문토기가 북부 九州에 국한해 분포했다. 북부 九州에 서울, 청주 등 백제 중앙 지배지역으로부터의 반입품으로 추정되는 조족문 호가 확인된 것은 백제가 4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북부 九州의 호족들과 교섭한 흔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시기 近畿지방에서 처음으로 마한토기가 출현했던 점도 주목된다. 그러나 5세기 전반이 되면 一變하여, 다량의 마한토...
TAG 마한, 백제, 일본(왜), 백제(계)토기, 수혜기, 須惠器, 교차편년, 도래인, Mahan, Baekje, Japan(wa), Baekje style pottery, Suek, i Cross dating, Migrants from Korea
무령왕릉(武寧王陵) 매지권(買地券)의 기원(起源)과 수용배경(受用背景)
장수남 ( Su Nam Jang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1] 제54권 84~112페이지(총29페이지)
이 글은 무령왕릉 출토 매지권(買地券)의 기원 및 수용배경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다. 무령왕릉(武寧王陵)이 백제사 연구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誌石), 그리고 같은 석판에 기록된 매지권 덕분이다. 특히 많은 연구자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매지권이며, 그것은 지신들로부터 땅을 산다는 일종의 토지매매문서와도 같은 기록이다. 필자는 기왕의 여러 연구 성과를 참고하고 아울러 최근까지 진행된 중국 매지권 연구의 동향을 일차적으로 파악하였으며 그러한 토대 위에서 무령왕릉 매지권이 직접적으로 중국 어느 시기의 어떠한 매지권과 관련지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와 같은 새로운 상장(喪葬)요소가 어떠한 배경 아래에서 백제 사회로 전해진 것인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중국에서 매지권이 처음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동한(東漢)시기 말이며 이후 일정한 형...
TAG 무령왕릉, 매지권, 금비령, 도교, 장묘제도, Tomb of King Muryeong, Land Purchase Record, Tombstone Prohibition Order, Taoism, Memorial Service
백제(百濟) 정림사식가람배치(定林寺式伽藍配置)의 전개(展開)와 일본(日本)의 초기사원(初期寺院)
이병호 ( Byong Ho Lee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1] 제54권 113~143페이지(총31페이지)
본고는 백제사원의 가람배치에 관한 최근의 발굴성과를 ``定林寺式伽藍配置``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고 이를 일본의 초기사원과 비교하였다. 정림사식가람배치는 일본의 四天王寺式伽藍配置과 비슷하지만 講堂과 回廊의 연결이 북회랑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동·서회랑 북단의 附屬建物, 강당지 동서쪽의 別途建物로 연결되는 방식을 취하는 특징이 있다. 동·서회랑 북단의 부속건물이라는 것은 僧房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좀더 公的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東堂과 西堂``으로 부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양식의 가람배치는 소조상을 비롯한 공반유물과 문헌기록을 통해 볼 때 사비 천도(538년) 이후 중국 南朝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지만, 부분적으로 고구려의 영향도 함께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군수리사지나 왕흥사지가 건립되는 6세기 중후반부터는 동·서 회랑 외곽에 건물이 ...
TAG 불교사원, 정림사식가람배치, 부속건물, 남조, 미륵사지, 사천왕사식, Temple site, Site Layout of Jeonglim temple, Additional buildings, Southern Dynasties, Mireuk temple site, Sacheonwang temple style
백제(百濟) 무왕(武王)의 태자(太子) 책봉(冊封)과 왕권(王權)의 변동(變動)
강종원 ( Jong Won Kang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1] 제54권 145~169페이지(총25페이지)
본고에서는 무왕 말기의 정국변화에 대한 검토를 통해 무왕 31년 갑작스러운 사비환궁의 문제, 무왕 33년에 의자가 태자에 책봉되는 정치적 배경, 그리고 무왕 말기의 정치적 상황과 왕권의 변동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였다. 일반적으로 무왕은 익산경영과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통해 왕권강화에 성공한 왕으로 평가되었다. 그렇지만 무왕의 갑작스런 사비환궁, 그리고 사비환궁 이후의 태자책봉, 무왕 말기에 나타난 국정상황 등을 통해 볼 때 기존의 견해와는 다른 정치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즉, 무왕의 사비환궁은 익산세력의 약화와 사비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사씨세력의 부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씨의 등장 배경에는 대신라 및 고구려 방비, 그리고 익산경영에 따른 군사적·경제적 필요성으로 인해 무왕이 大姓貴族 가운데 가장 세력이 컸던 사씨와의 정치적 타협의 결...
TAG 해동증자, 海東曾子, 사비환궁, 태자책봉, 太子冊封, 역학관계, 力學關係, 대왕, 大王, 상왕, 上王, 쌍릉, 雙陵, Haedong Jeungja, Return to the Sabee Palace, Installation of the Crown Prince, Dynamics, Ex-King, Couple Tombs
고대 일본 등원씨(藤原氏)와 백제계 도왜인(渡倭人)
박재용 ( Jae Yong Park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1] 제54권 171~194페이지(총24페이지)
백제계 도왜인은 大化 이전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고유 직능을 바탕으로 기반을 잡은 씨족, 그리고 660년 백제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 간 백제 유민과 그 후손들을 가리킨다. 대화 이전에 건너간 백제계 씨족들은 畿內, 그 가운데에서도 河內와 大和지역에 대부분 거주했다. 이들은 서로 동족관계를 맺고 고유 직능을 바탕으로 기내의 다른 유력씨족들과 결탁하면서 유명한 문인집안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한편 660년 백제의 멸망 후 일본에 건너 간 백제 유민은 天智天皇과 中臣連鎌足의 대내외정책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천지와 겸족은 씨족정책의 일환으로 근강 천도를 단행하고 그 전후에 백제 유민들을 대거 근강 지역으로 이주시킨다. 백제 유민들은 근강 지역의 개발은 물론 천지조의 새로운 지배체제를 구축하는데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근강조정은 기내...
TAG 百濟系 渡倭人, 中臣連鎌足, 藤原朝臣不比等, 田邊史氏, 『日本書紀』, 『藤氏家傳』, the emigrants from Baekje, Nakatominomurajikamatari, Fujiwaranoasomifuhito, Tanabenofuhito, Nihonshoki, Tuosikaden
일본 "세계사도록(世界史圖錄)"에 나타난 고대(古代) 한국사상(韓國史像)
박현숙 ( Hyun Sook Park ) , 서보경 ( Bo Kyung Seo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1] 제54권 195~221페이지(총27페이지)
이 글은 일본 세계사 교과서의 보조 자료인 『世界史圖錄』에 나타난 고대의 韓國史像을 살펴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世界史圖錄』은 ``동아시아 세계`` 속에 한국을 위치 지은 뒤,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에 고대의 한국사는 ``위씨조선의 멸망과 漢의 군현 설치``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군현 지배가 종결되는 4세기 중엽이 되어서야 한반도 남부 지역에 고대 국가가 형성되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은 한민족의 내적인 발전 역량을 무시하고, 중국 중심의 역사 속에 한국사를 위치 짓던 ``植民地支配``論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본 도록은 ``동아시아 세계``의 ``형성과 전개``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다 보니, 한국과 일본의 선사시대부터의 관계상은 논외로 하고...
TAG 세계사도록, 한국사상, 韓國史像, 고조선, 한사군, 동이(東夷)의 소제국론(小帝國論), 동아시아세계, 동아시아문화권, 불교전파, 조공책봉체제, 朝貢冊封體制, 임나일본부, 任那日本府, Illustrated Japanese history book, Korean history, Gojoseon, The Four Commanderies of Han, a small empire among the eastern barbarians, East Asian world,
특집(特輯) : 고대(古代)동아시아 궁성(宮城)의후원(後苑) ; 중국(中國) 고대(古代) 도성(都城)의 원림(園林) -한당(漢唐)시기의 고고학 발견을 중심으로-
류진동 ( Zhen Dong Liu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1] 제53권 1~20페이지(총20페이지)
허난 옌스 商城과 정저우 商城에서 발견된 연못 유적을 통해 늦어도 商 초기 도성의 궁성 안에 원림의 시설을 축조하려 설계하기 시작하였으며 궁실 건축의 유기적 구성 요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원림은 궁성의 북부에 위치하고 연못을 중심으로 하며 연못 형태는 네모나게 규칙적인 점이 초기 원림의 특징이다. 兩周 시기 도성 내 원림은 진일보하여 商周시기가 중국 고대 도성 원림 시설, 원림 제도의 개시 출현과 초보 발전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秦의 수도 함양성 동쪽의 蘭池와 漢의 수도 장안성 서쪽의 建章宮 안의 太液池를 대표로 하는 秦漢시기 도성의 池園의 구조는 商代 이후의 전통을 계승하였는데 연못을 중심으로 하였고 연못의 형태는 전통의 장방형의 규율을 계속하는 동시에 일부 변화도 발생하였다. 이 시기 원림 구조에서 가장 중대한 변화는 一池三山(...
TAG 중국, 고대 도성, 원림, 고고학 발견, China, ancient capital, garden, archaeological discovery
특집(特輯) : 고대(古代)동아시아 궁성(宮城)의후원(後苑) ; 백제(百濟) 궁성(宮城)의 원지(苑池)와 후원(後苑)
김낙중 ( Nak Jung Kim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1] 제53권 21~49페이지(총29페이지)
한성기에서 사비기에 걸쳐 백제에서 원지 혹은 후원 조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은 문헌기록을 통해 알 수 있으나 이를 고고학적으로 실증할 자료가 아직 분명하지는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굴조사된 익산 왕궁성의 정원과 후원은 백제 원림 조성의 연구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왕궁성 정원은 궁성에서 중심적인 활동이 이루진 공간인 전각구역과 자연 구릉을 그대로 활용한 그 북편의 후원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하여 업무 또는 생활의 공간과 휴식의 공간을 이어주는 기능적이며 공간적인 연결고리가 된다. 정원은 수조시설, 중심 연못(池), 수량 조절 시설, 최종적으로 물이 모이는 부분, 그리고 이를 관상하기 위한 누각과 회랑형 건물 등이 체계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정원은 方池라는 백제적인 요소에 水景 처리기법과 조경석의 활용 등 중국 남조의 영향이 복합되어 나타난 것이며 왜...
TAG 백제, 익산 왕궁성, 정원, 후원, Baekje, Iksan, 익산, 益山, Wanggungni, 왕궁리, 王宮里 site, palatial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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