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포저(浦渚) 조익(趙翼, 1579-1655)의 주석서인 『대학곤득(大學困得)』 ‘성의장(誠意章)’의 ‘무자기(無自欺)’에 개념과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주희(朱熹)는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자기(自欺)’는 치지(致知) 공부가 미진하여 마음에 진실되지 않음[未實]이 있어 생겨난 오류라 하였다. 그는 사람이 부자(附子)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 먹지 않듯이 진실로 악이라는 것을 알면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현상에 생기는 지행불일치로 인한 악한 행위의 문제에 대하여 치지공부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조익은 『대학곤득(大學困得)』의 ‘성의장(誠意章)’의 ‘무자기(無自欺)’에 대한 주석에서 ‘자기(自欺)’의 뜻을 선을 실행해야 하고 악을 하지 말아야 함을 알면서도 선을 하지 않고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본고에서는 김춘택 문학 연구의 외연을 확대하는 방안으로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다섯 편의 '錄'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문집 내 '○○록'으로 분류하는 경우와 달리, 피체와 압송, 투옥과 국문, 유배와 이배 등 정치적 시련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필기체 자기서사 작품이다.
대상 작품들은 정치적 사건의 흐름 속에 놓인 자신의 경험이 '사실'로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사실 기록은 '록'이라는 문체가 태생적으로 가지는 서술 경향에 견인된 점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점 때문에 김춘택이 '록'이라는 문체를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誣告로 밝혀질 만큼, 아니 실제 무고가 아니다 하더라도 정황적 근거나 傳聞에 의해 죄를 받게 된 김춘택 입장에서는 자신의 삶에 대한 '사실' 전달이 무죄임을 밝혀줄 가장 강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
『여사시집(麗史詩集)』은 한국 여성시사에서 기념비적인 시집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본고는 홍윤숙의 첫 시집 『여사시집』을 미시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문학사적 위상과 의의를 재조명한다.
이 시집에는 독특한 장소 정체성이 나타난다. 실향민으로서의 정체성도 나타나지만 '지금-여기'에 대한 장소애도 나타난다. 실향민 정체성과 연결된 '방황하는 주체'는 '지금-여기'를 향유하면서 무장소적 영역을 장소화한다. 시적 주체는 고향의 소유-회복을 추구하는 대신, '지금-여기'를 향유하는 것이다. '방황하는 주체'는 장소를 소유하지 않고 향유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존재적 실존의 한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홍윤숙은 존재적 실존 의식을 사랑의 상상력, 나무의 이미지, 가족의 이미지 등을 통해 다양한 양상으로 형상화한다. 그는 존재적 실존의...
『여사시집(麗史詩集)』은 한국 여성시사에서 기념비적인 시집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본고는 홍윤숙의 첫 시집 『여사시집』을 미시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문학사적 위상과 의의를 재조명한다.
이 시집에는 독특한 장소 정체성이 나타난다. 실향민으로서의 정체성도 나타나지만 '지금-여기'에 대한 장소애도 나타난다. 실향민 정체성과 연결된 '방황하는 주체'는 '지금-여기'를 향유하면서 무장소적 영역을 장소화한다. 시적 주체는 고향의 소유-회복을 추구하는 대신, '지금-여기'를 향유하는 것이다. '방황하는 주체'는 장소를 소유하지 않고 향유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존재적 실존의 한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홍윤숙은 존재적 실존 의식을 사랑의 상상력, 나무의 이미지, 가족의 이미지 등을 통해 다양한 양상으로 형상화한다. 그는 존재적 실존의...
지금까지 1960년대 한국 시단의 탈식민주의 연구는 김수영과 신동엽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김수영과 신동엽은 1960년대 한일협정과 베트남 파병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반제국주의적 정치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식민지의 표상에 '지역적 연대'의 구체적 질감을 부여하는 차원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이 논문에서 주목하는 김재원, 이중, 권용태는 베트남 파병과 한일협정에서 비롯된 탈식민주의 사유와 '식민지 아시아'의 표상을 획득하고자 하는 시적 이행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6·3시위의 시적 형상화뿐만 아니라, 필리핀, 이라크, 버마, 파키스탄을 아우르는 식민지 아시아의 표상을 천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1960년대 시적 사유에 정치적 깊이를 더해준다.
그러나 결국 1970년대 유신체제로 진입하면서, 이들이 보여준 '식민지 아시아'의 사유는...
국어(문학) 교과서에 수록되는 작품들은 국어과 교육과정을 구현하고 있으며, 실제 교수-학습에서 직접적인 교육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교육적 중요성을 지닌다. 문학작품 중에서도 특히 시는 정제된 형식을 통해 언어의 의미와 미의식을 가르칠 수 있고 고급한 방식으로 인간과 세계를 만날 수 있기에 국어교육에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러나 현재 국어(문학)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시 작품들은 선정 기준이나 교육적 가치에 일관성이 부족하여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좋은 시의 여러 기준 가운데 본고에서는 논리성을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시의 논리란, 겉으로 드러나는 언어 표현에서부터 내적 구조와 의미까지 ‘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파토스뿐 아니라 로고스에서도 공감과 설득이 되는 것을 말한다.
논리성이 좋은 시의 절대적...
본 글은 소강절의 상수학 가운데 '수학'이 15-16세기 조선 음운학, 대표적으로 『훈민정음』(이하 '정음'이라 함)과 서경덕의 『성음해』에 끼친 영향을 관찰하는 글이다. 정음이 소강절 역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서경덕은 조선조 소강절 역학 전문가이자 그의 『聲音解』는 최초의 소강절 성음론의 해설서이다. 소강절 상수학의 한 분야인 성음론은 음운학과 수학으로 구성되었고, 그는 이 둘을 결합하여 중국과 조선의 상수학과 음운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종은 소강절의 성음론을 놓치지 않고 '聲'을 궁리하고 '象'을 입혀 세계적 언어인 정음을 창제했다.
본 연구는 먼저 소강절 수학을 파악하기 위해 3명의 주석가의 주석을 분석한 바, 소강절 수학의 핵심은 가일배법, 四府法, 체4용3론 등임을 알았다. 이 가운데 정음 창제에 영향을 끼친 것은...
李世華는 『고려사』·『고려사절요』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1232년(고종 19) 제2차 廣州山城戰鬪를 승리로 이끈 대몽전쟁의 숨은 주역이다. 그는 貞州李氏 시조로 알려져 있으며, 무반 가문 출신으로 추정된다. 「이세화묘지명」에 의하면, 이세화는 과거급제 후 국왕 熙宗을 보필하였고, 거란족과의 전쟁에서는 원수 趙沖을 보좌하면서 조충의 천거를 받기도 하였다.
이세화는 崔忠獻執權期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으나 崔瑀執權期에 무인집정 崔瑀로부터 能文能吏로 인정받아 출세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廣州副使로서 제2차 광주산성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은 그의 순탄한 관직생활을 담보 받는 지름길이 되었다. 이 규보는 문·무를 겸전하고 행정력, 군사적 재능까지 겸비한 이세화를 당대 보기 드문 온전한 인재로 높게 평가하였다.
1232년 광주산성전투는 고려 중부권 최초의 승...
이 논문은 해방기 최대 규모의 문학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에서 1947년 3월 출간한 『(1946년판) 조선시집』의 구성과 배치 상의 특이점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1946년판) 조선시집』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는 이남에 거주하는 시인의 시 38편, 2부에는 이북에 거주하는 시인의 시 11편, 총 49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이는 당시의 간행물들과 비교해 볼 때 매우 이채로운 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문이나 목차에서 이 특별한 구성 원리를 전혀 부각시키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남-북을 가르는 삼팔선에 구애되지 않으려는 이 시집은 '북조선예술총연맹'의 기관지 『문화전선』 1, 2호가 입수된 후 신속히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문학가동맹' 시부위원회가 주축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북조선예술...
임화와 홍기문은 조선어학회의 언어규범화운동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민족어를 주장했다. 임화와 홍기문은 민족을 하나의 형식으로 이해했고, 그 안에 프롤레타리아적 문화요소를 채우는 것을 사회주의 민족문화라고 보았다. 민족어도 언어가 사회경제적 조건에 규정된다는 유물론적인 인식과 언어의 발전은 언어 간의 상호접촉으로 진행된다는 언어관을 기반으로 해야한다고 했다.
임화와 홍기문은 사회주의 언어관을 바탕으로 다수 인민이 사용하는 일상어를 표준어로 제시했다. 조선어학회의 표준어가 노동계급의 언어를 간과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언어를 강제한다고 비판했다. 현재 조선의 부르주아 계급은 사회경제적 한계로 인해서 독자적인 문화수립의 역량이 없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언어규범화운동을 사회주의자들이 대신 진행해야 했다.
임화와 홍기문이 말하는 다수 인민은 노동자·농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