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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AND 간행물명 : 동양미술사학81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부산(釜山) 고관요(古館窯)에 대한 고찰(考察) -위치(位置), 기술(技術), 그리고 의의(意義)를 중심으로
카타야마마비 ( Katayama Mabi )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2015] 제3권 49~88페이지(총40페이지)
흔히 왜관요(倭館窯)란,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일본 쓰시마번[對馬藩]이 경영하던 가마를 말한다. 그 당시, 쓰시마번은 왜관(倭館)에서 다기(茶器)를 만들어 권력자들에게 바쳤다. 이 글은 고관(古館)이라고도 하는 왜관에 1639년부터 1678년까지 설치된 가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고관은 지금 부산 동구 수정동에 있었다고 하는데, 어디에 가마가 있었는지 오랫동안 의문 속에 있었다. 근대기의 기록 등을 살펴보면, 고관공원(古館公園) 옆자리에 있었다는 기사가 있다. 이를 근거로 한 현지답사의 결과, 가마의 위치가 지금 803번지 일대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마터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이 가마는 고관과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관 가마에서 제작된 유물도 역시 오래된 의문점의 하나이다. 대마도 킨세키죠[金石城] 유적에서는...
TAG 고관(古館), 대마번(對馬藩)[쓰시마], 김석성(金石城)[킨세키죠], 가마, 다완(茶碗), 원전주의(原典主義), Gogwan, Tushima, Kinseki castle, Kilns, Tea bowls, Original
청화백자에서 용준(龍樽)이 갖는 의미 -특히 17, 18세기를 중심으로-
최건 ( Choi Kun )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2015] 제3권 89~131페이지(총43페이지)
우리 도자의 역사에서 고려시대 청자의 대표를 梅甁이라 한다면 조선시대 백자는 龍樽이라 할 수 있다. 청화로 그린 용준은 조선의 개국 이후 체제가 정비되고 儀禮와 관련 器皿制式이 정립되는 첫 단계부터 조선왕조의 마지막까지 기본 골격을 준수하면서 시종일관 하였다. 따라서 청화용준을 조선백자의 상징이며 중심적 존재라고 하는 데 이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간에 연구 경향은 17세기에 청화재료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假畵와 鐵畵재료인 石間朱를 썼고 또 그러한 상황이 오래 지속 되었다는 전제 아래 ‘철화백자의 시대’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결국 이러한 입장을 취함으로서 조선백자의 근간으로 조형의 중심을 이끌며 일정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온 청화용준이 일백년 가까이 단절되었고 다시 18세기에 새롭게 구성한 조형체계로 재등장 했다는 말이 되는데, 이러한 인식은 조선 중, 후기...
TAG 청화백자, 청화백자용준, 철화백자, 청화, the blue-and-white porcelains, dragon jars in blue-and-white porcelain ware, pocelain decorated with underglaze iron red, cobalt blue
조선관요백자의 현대적 계승과 발전 - 석정 한익환 백자 중심
한유진 ( Han Yu-jin )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2015] 제3권 133~164페이지(총32페이지)
석정 한익환은 1970년 중반 혜곡 최순우의 감식안에 힘입어 전승도자 계승자로서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다. 그에게는 항상 전승도자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그는 전승을 위해 연구를 거듭한 요업공학자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는 일반적으로 도예가들이 행하는 기형의 연구보다는 흙의 실험을 통한 도자기 색의 연구에 더 집중하였다. 1940년대부터 도자기 기술의 바탕이 되는 공부를 시작한 석정 한익환은 1950년 강원도 홍천의 전통가마에 파견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전통자기의 제작기법을 배웠고 그 후 현대도자기 공장의 연구실에서 도자기 색을 만들어내는 조합사의 길을 걸었다. 최고의 색깔 조합사로 이름을 날리면서 전통도자기 제작을 위해 독립적인 가마를 운영하였으나 결혼과 함께 잠시 중단하였다. 그러나 전통 도자기 제작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1960년대...
TAG 석정 한익환, 최순우, 익요, 조선관요백자, Seokjeong Han Ik-hwan, Hyegok Choi Soon-woo, Ikyo, white porcelain
고려청자, 조선 청화백자의 경덕진요와의 관계 고찰 -경덕진 송원시기 자기수출과 신안침몰선의 자기 중심으로-
강건신 , 박대남(번역)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2015] 제3권 165~189페이지(총25페이지)
석정 한익환은 1970년 중반 혜곡 최순우의 감식안에 힘입어 전승도자 계승자로서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다. 그에게는 항상 전승도자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그는 전승을 위해 연구를 거듭한 요업공학자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는 일반적으로 도예가들이 행하는 기형의 연구보다는 흙의 실험을 통한 도자기 색의 연구에 더 집중하였다. 1940년대부터 도자기 기술의 바탕이 되는 공부를 시작한 석정 한익환은 1950년 강원도 홍천의 전통가마에 파견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전통자기의 제작기법을 배웠고 그 후 현대도자기 공장의 연구실에서 도자기 색을 만들어내는 조합사의 길을 걸었다. 최고의 색깔 조합사로 이름을 날리면서 전통도자기 제작을 위해 독립적인 가마를 운영하였으나 결혼과 함께 잠시 중단하였다. 그러나 전통 도자기 제작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1960년대...
明代紀年墓出土梅甁硏究
정붕발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2015] 제3권 191~213페이지(총23페이지)
梅甁流行于宋元明淸時期, 出現之初是一種用于盛酒的高?瓷器, 隨着時代的發展和工藝的進步, 梅甁的功能逐漸多樣化, 除繼續作爲容器使用外, 還成爲一種奢侈品, 用來陳設或收藏。正因如此, 梅甁成了一個時代精良制瓷技術的代表, 是否燒造梅甁和燒制梅甁質量的高低成爲衡量一個?場燒制能力的標准之一。墓葬中亦開始出現作爲墓主日用品或生前收藏品入葬的梅甁, 這類梅甁不但能對喪葬制度有所反映, 還能從一個側面展現當時的制瓷手工業狀況。但墓葬出土梅甁大多无款, 所以對紀年墓出土的梅甁進行考察, 幷排列出一個斷代標准器的序列就顯得?有必要。本文根据已發表的考古資料對明代36座紀年墓出土的75件梅甁進行整理分析, 排列出明代梅甁的發展序列, 幷在此基礎上對相關問題作初步探討。
論文 : 西方淨土變形式的形成過程與完成時間
왕혜민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2013] 제2권 5~31페이지(총27페이지)
돈황 막고굴의 경변도 중 서방정토변은 수량이 가장 많은 경변 중 하나이다. 이 경변도는 남북조시대 등장하였고, 당대에 접어들어 수량이 크게 증가하였다. 돈황 막고굴에 현존하는 서방정토변의 종류는 약 34종 1200폭이 현존한다. 경변도의 출현시기부터 완성시기까지는 150년이라는 긴 세월을 요구하였다. 돈황 막고굴의 서방정토변은 구도, 양식특징, 내용 등에 기초하여 세시기로 구분된다. 제1기는 4세기중엽~6세기중엽으로 단독상과 설법도의 예가 현존한다. 서방정토 도상은 4세기 중엽부터 출현하기 시작하며 주로 단독상에서 확인된다. 병령사 제169굴 무량수불설법도(無量壽佛說法圖, 424年)에서 벽화로 출현하였으며, 막고굴에서는 제285굴(538年)이 대표적이다. 제2기는 6세기 중엽~7세기 말으로 서방정토변이 출현하는 단계이다. 맥적산 제127굴 서방정토...
TAG 돈황, 막고굴, 서방정토변, 미생원, 십육관, 변상도, 敦煌, 莫高窟, 西方淨土變, 未生怨, 十六觀, 變相圖
論文 : 白村江以後日本の佛敎寺院に 見られる百濟遺民の影響
히시다테츠오 ( Hishida Tetsuo )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2013] 제2권 32~50페이지(총19페이지)
돈황 막고굴의 경변도 중 서방정토변은 수량이 가장 많은 경변 중 하나이다. 이 경변도는 남북조시대 등장하였고, 당대에 접어들어 수량이 크게 증가하였다. 돈황 막고굴에 현존하는 서방정토변의 종류는 약 34종 1200폭이 현존한다. 경변도의 출현시기부터 완성시기까지는 150년이라는 긴 세월을 요구하였다. 돈황 막고굴의 서방정토변은 구도, 양식특징, 내용 등에 기초하여 세시기로 구분된다. 제1기는 4세기중엽~6세기중엽으로 단독상과 설법도의 예가 현존한다. 서방정토 도상은 4세기 중엽부터 출현하기 시작하며 주로 단독상에서 확인된다. 병령사 제169굴 무량수불설법도(無量壽佛說法圖, 424年)에서 벽화로 출현하였으며, 막고굴에서는 제285굴(538年)이 대표적이다. 제2기는 6세기 중엽~7세기 말으로 서방정토변이 출현하는 단계이다. 맥적산 제127굴 서방정토...
논문(論文) : 백촌강(白村江) 이후 일본(日本)의 불교사원(佛敎寺院)에 보이는 백제(百濟) 유민(遺民)의 영향(影響)
히시다테츠오 ( Hishida Tetsuo )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2013] 제2권 51~75페이지(총25페이지)
663년 백촌강전투(白村江戰鬪)이후 일본열도로 건너간 백제 유민은 일본 열도의 율령 국가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정부에 중용된 자도 많지만 한편에서는 지방에 정착한 사람들도 많이 존재했다. 그 구체적인 예로서 문헌 기록에 남는 근강국(近江國)(자하현(滋賀縣)) 포생군(蒲生郡)의 유적들을 들 수 있다. 이 지역에 남겨진 「귀실집사묘비(鬼室集斯墓碑)」나 석탑사삼층석탑(石塔寺三層石塔)은 동 시대의 것은 아니지만 백제 유민의 기억에 관계된 기념물이라 할 수 있다. 동 시대의 유적으로서 사원유적이 중요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석탑사(石塔寺)의 근처에 위치하는 기전(綺田)[카바타]폐사(廢寺)가 백제 유민과 관계된 사원이라고 추측하였다. 이사원의 창건와(創建瓦)인 「호동식(湖東式)」軒瓦는 일본열도에서는 특이한 문양을 갖고 있고, 새롭게 한반도에서 가져온 것...
TAG 백촌강, 白村江의 전투, 백제 유민, 귀실집사, 鬼室集斯,  근강국포생군, 近江國蒲生郡, 삼곡사, 三谷寺,  법흥사폐사, 法興寺廢寺, 白村江の戰鬪, 百濟遺民, 鬼室集斯, 近江國蒲生郡, 三谷寺, 法興寺廢寺
논문(論文) : -사천성(四川省) 협강(夾江) 천불암(千佛岩) 마애(磨崖)를 중심(中心)으로-
히다로미 ( Hida Romi )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2013] 제2권 76~102페이지(총27페이지)
9세기는 불교조각의 지역적 차이와 민중화가 가속화된 시대였다. 본고에서는 2009~12년에 사천성문물고고연구원 등과 공동조사를 실시했던 천불암 마애 중에 9세기에 유행했던 미타정인을 취한 아미타상과 성승상에 주목했다. 불공이 한역한밀교경궤에 설해진 미타정인상(像)은 협강에서 17건이 확인되나 그 안에서 밀교적인 성격은 찾아볼 수 없고, 삼불 혹은 사불병좌감에서 종래의 전법륜인상을 대신하여 아미타불 형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편, 돈황벽화에서는 9세기에도 미타정인의 작례를 찾아볼 수 없기에 지역 간의 차이를 엿 볼 수 있다. 천불암의 중심구(區)인 제91호감은 승가·보지·만회라는 삼성승상으로, 9세기에 일본 승려 엔닌이 같은 주제의 단감상을 가져왔다는 사료를 가지고 유추하면, 특히 수난구제水難救濟)와 행로안전(行路安全)이라는 이점을 바라고 청의강 기슭의 낭떠러지...
TAG 9세기 사천지역의 불교조각, 미타정인, 삼성승상
논문(論文) : 양주(楊州) 휘상(徽商)의 문화적 욕구와 그림시장에 미친 영향
유미경 ( Yu Mig Yeong )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2013] 제2권 103~128페이지(총26페이지)
본 논문은 18세기 중국회화사에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을 가져온 양주 화단의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휘상들의 문화적 성향과 경제적 영향력이 당시 그림시장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중국 상방(商幇)가운데 휘상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문사적 향유를 중시하는 경제성향에 관해 문헌을 통해 고찰하였다. 아울러 연관 작품들의 비교 분석을 시도하였다. 강남부자를 대표했던 안휘출신 상인들, 이른바 휘상들은 세 명이 상인이면 한명은 유학을 공부할 만큼 문풍이 만연했던 문헌국 출신들로서 고이호유(賈而好儒)란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당시 유교적 사회제도에서 천한신분의 상인계층에 속하면서도 문사의 풍격을 숭상하는 지식인으로 평가 받은 휘상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과 자부심은 안휘지역의 문화적 정서로부터 배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
TAG 휘상, 문헌국, 고이호유, 18세기 양주화단, 서화의 상품화, huishang, learned state, jia er hao ru(賈而好儒), 18th-century Yangzhou painters, commercialization of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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