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라틴화 신문자 방안의 탄생과 추진은 19세기 중엽 이래 어문 구조 전반에서 걸친 변화 추세와 문자개혁론이나 병음문자론과 같은 어문 인식의 심화에 힘입은 것이었다. 첫째, 19세기 중엽 이래 한어의 어휘 구조가 단음절어 중심에서 다음절어 중심으로 변화하고, 한어의 문장 구조가 문언문에서 백화문, 그리고 대중어문으로 변화하고, 한자의 표음 방법이 반절법에서 표음자모법으로 변화하는 추세를 배경으로 창안된 것이었다. 둘째, 문자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문자의 서사형식뿐만 아니라 한어의 어휘와 어법, 그 안에 담긴 세계관과 문화의식을 개혁하고, 병음문자와 문학의 결합을 통해 독자적인 언어구조와 미적가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인식을 배경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셋째, 문자의 의미 생성, 병음문자 ‘자형’의 자격과 역할 등에 대한 인식의 심...
한자를 사용하는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 사용하는 한자에 대한 규범화 논의를 통해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를 선정하였다. 선정의 취지는 한자의 표의 기능을 활용해 구어가 아닌 문자를 가지고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각국의 상용한자 범위는 모두 다르다. 중국은 3,500자, 일본은 2,136자, 한국은 1,800자이다. 범위도 다르고 상용의 정도 역시 다르다. a라는 한자가 A라는 국가에서는 상용의 정도가 매우 높지만, B, C라는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공용한자 808자는 세 나라에서 공통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선정된 한자들이라고 보아야 옳다. 그리고 언어별 한자 사용환경도 다르므로 공용한자 808자가 각국의 최상위 상용한자를 모두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공용한자 외에 각국...
유구한 문자 전통을 지닌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많은 識字교재가 지속적으로 편찬되어 왔는데, 본 논문의 주요 연구 대상은 그 중 하나인 淸代 王筠이 저술한 《文字蒙求》이다. 이 책의 저자인 왕균은 《說文解字》와 漢字學에 대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남겨, 후세인들에게 說文四大家 중의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 주목할 점은 그가 說文四大家 중에서 유일하게 식자교육에 힘을 쏟았던 인물이라는 것이며, 특히나 그의 저술인 《文字蒙求》는 후대 학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왕균의 학문적 성과만큼이나 그의 저작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으나 아쉽게도 대부분이 《說文釋例》와 《說文句讀》에 관한 것이고, 《文字蒙求》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미비한 상황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왕균의 《文字蒙求》가 지닌 가치와 현대의 한자 교육에 있어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는 한자 교학법을 소개하...
백이·숙제는 유교문화권 국가에서 충절의 상징으로 확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忠節의 상징 백이·숙제 이미지는 사마천의 《사기》 <백이열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武王은 시호를 文王이라고 추존한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받들어 싣고 동쪽으로 殷나라 紂王을 정벌하려 할 때 백이와 숙제는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는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다니 이를 孝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된 자가 군주를 시해하려 하다니 이를 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며 주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諫言을 한다. 이 장면으로 인해 백이·숙제는 不事二君하는 절개의 대명사로 중국은 물론 조선, 일본, 월남에까지 그 이미지가 퍼져나가게 된다. 본고에서는 《사기》 <백이열전> 이전에도 충절의 이미지가 있었는지 살펴본다. 이를 위해 《사기》 이전 문헌인 유가의 《논어》와...
강남지역 사찰은 서진(西晉) 시대 창건 때부터 강남 지역의 山水文化(산수시, 산수화, 산수유람 등), 그리고 강남 원림문화와 관련성이 있었다. 삼국 시대(三國時代) 이래 우리의 선사들과 중국 강남 전통 사찰과의 빈번한 교류를 비추어 볼 때,양국 사찰의 경관은 상호 관련성이 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점에서 볼 때, 중국 강남 지역 전통 사찰의 경관에 대한 연구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남송 이후 성립된 강남 전통 사찰 중 바다경관으로 보타산(普陀山) 사찰, 호수경관으로 정자사, 산간경관으로 호구사를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강남 전통 사찰에 축적되어 있는 사대부와 선사들의 시문을 통해 선적 공간으로서의 사찰이 어떻게 심미적 공간과 결합하는지를 살펴보았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강남의 전통사찰 관...
본고는 명대 후기 廣西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邊境筆記를 주요 대상으로 하여 광서에 대한 역대 지식과 상상의 축적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광서는 진시황 이후 줄곧 중국의 강역이었으나 근대 이전까지 문화적, 심리적, 정치적으로 ‘내부의 변경’으로 남아 있었다. 광서 지역의 상당 부분이 명대까지 토착민들의 자치권을 인정하였고 극심한 말라리아의 유행으로 인해 한족들이 광서에 진출하는데 제한이 있었다. 광서를 재현한 글쓰기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광서의 공간을 ‘邊境化’하고 있다. 본고는 명대 후기의 변경필기를 주로 분석했는데 특히 鄺露(1604~1650)의 《赤雅》를 주요하게 다루었다. 광로는 생전의 奇行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의 《赤雅》 역시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소재와 내용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赤雅》에서는 《...
주이준의 영물사 <沁園春> 12수는 南宋代 劉過로부터 시작된 <심원춘> 사패로 여성의 몸에 대해 노래하는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보다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였고 聯章體의 형식을 사용하여 하나의 서사를 완성하였으며, 작자의 결핍과 욕망을 재현한 특정 여성의 이미지를 생산하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여성의 신체를 다룬 작품과 차이가 있다. 이는 작자 주이준의 개인적인 생애의 영향을 받은 것인 동시에 ‘사물[物]’을 바라보는 명청 교체기 지식인의 시각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본 고에서는 이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청초 여성의 신체를 다룬 영물사가 어떠한 환경에서 발전하였으며, 그것이 묘사하고 있는 여성 형상이 어떠한 특징과 의미를 가지는지 밝히고자 한다.
<하나, 그리고 둘>은 인간의 보편적 인성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 속 소년 양양(洋洋)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뒷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 그들에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자기의 뒷모습을 스스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며, 이는 인간이 가진 ‘주관주의’에 대한 훌륭한 은유이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변주를 활용하여 주제를 표현해내고 있는 바, 본고에서는 시각성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타이베이인의 정체성의 문제에 접근해보고자 했다. 시각의 근대성, 시각과 인지의 관계, 시각과 권력 등 시각성(視覺性)에 대한 담론은 매우 다양하지만,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일반론보다는 텍스트에 집중하여 영화 속 시각성의 문제를 해석하였다.
본고의 구체적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1) 영화 속에서 양양이 말한바 ‘진실의 절반...
본 연구는 장아이링(張愛玲)의 《적지지련(赤地之戀)》(1954)과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1953)를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서 순수 텍스트 자체에 대한 평행비교를 통하여, 토지개혁이 어떻게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장아이링의 《적지지련》과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는 창작시간, 주제, 토지개혁을 바라보는 시각 면에서 많은 비슷한 점이 있다. 작품은 비슷하지만 두 작가 사이의 교류나 영향 관계는 찾아볼 수 없다. 토지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 자체가 한·중 두 나라에 비슷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 논문은 새로운 시각으로 기존 토지개혁 연구에서 바라보지 못한 맹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2장에서는 당을 대표하는 공작대원들이 농촌으로 파견되어 어떻게 소작인들을 선동하여 소작인과 지주의 갈등을 조장하고, 농촌사회의 윤...
본고는 《아시아의 고아(亞細亞的孤兒)》와 《화산도》라는 창작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작품을 비교하여 각각의 배경이 되고 있는 타이완과 제주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통해 두 지역의 거리를 좁히는 데 목적이 있다. 《아시아의 고아》나 《화산도》는 모두 그 정치적인 내용(그 많고 적음은 상관없이) 때문에 정치적 환경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작품이었다. 《아시아의 고아》는 일본 패망 전 주인공 胡太明의 삶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화산도》는 일본 패망 후 제주에서 벌어진 4.3 사건을 중심을 하고 있으나 주인공 이방근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의 삶에 대해서도 충분히 제시하고 있으므로 양자의 비교는 충분히 가능하다. 두 인물의 삶에 각인된 역사의 부채는 현재의 타이완과 제주에도 그 그림자가 뚜렷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양자의 비교를 통해 타이완과 제주의 거리를 좁혀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