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국가형성론 (부족국가론, 성읍국가론)

 1  초기국가형성론 (부족국가론, 성읍국가론) -1
 2  초기국가형성론 (부족국가론, 성읍국가론) -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초기국가형성론 (부족국가론, 성읍국가론)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초기국가형성론
1. 서론
초기국가 형성론은 계급분화에 기반하여 최초로 성립되는 국가의 출발점을 어디로 잡아야 하고, 단계를 어떻게 설정하며, 그 내용과 성격이 어떠한가를 둘러싸고 진행된 논쟁을 말한다. 이 논쟁은 기존의 통설이었던 부족국가론에 대신하여 성읍국가론, 취프덤(chiefdom, = 군장사회설)론 등의 대안들이 발표되고 있으며 이 세 가지 학설은 차츰 구체적인 연구 성과들이 쌓여 가고 있다.
2. 부족국가론
부족국가란 19세기 말 L.H.모건은 원시사회가 씨족 · 포족(胞族) · 부족 · 부족동맹으로 발전한다는 학설을 제기하였다. 그 결과 원초적인 국가형태의 기저에 있는 친족 ·씨족과 같은 혈연집단의 구조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하여 사회형태를 혈연적인 구조와 기능에서 성립하는 것과 재산 ·지역이라는 물적 관계를 기반으로 성립하는 것으로 구분하였는데, 혈연적인 형태를 보다 원초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의 경우 계급성을 강조했으나 차츰 혈연성에 비중을 두는 쪽으로 바뀌어 갔다. 국가 성립 초기에 이전부터 존재하던 혈연성이 일시에 소멸된 것은 아니므로 과도기를 설정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고 하겠으나, 그 강조점이 혈연성보다 차라리 지연성, 계급성에 두어져야 함에도 정작 그렇지 못했던 점 때문에 현재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란 혈연적인 요소를 극복한 지연적인 개념이나 부족국가란 혈연적인 개념과 지연적인 개념이 혼재되어 있는 모준적인 상황.
▷ 백남운
1933년『조선사회경제사』에서 그는 원시공동체 사회가 해체된 이후 곧바로 고대노예제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기적 단계로서 원시부족국가를 거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그 이유는 정치적 혁명이 아닌 내부적 생산력의 완만한 진전에 따라 서서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부족국가는 씨족제라는 원시공동체적 요소를 기본으로 하며 그 내부에 계급적 요소가 공존하던 과도기적 단계로 파악하였다.
3. 성읍국가론
부족국가론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은 1971년『신동아』주관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처음 지적하고 대신 서양사에서의 도시국가(都市國家)나 막스 베버의 성채국가론(城砦國家論), 중국사의 읍제국가론(邑制國家論) 등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고대사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의 수용을 강조하면서 하나의 가설로 성읍국가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성읍국가의 핵심인 토성 성읍이란 바로 토성을 일컫는 말.
과 지석묘와의 축조시기가 다르다는 것과 외형적 요소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흔히 국가의 성립과 발전의 주요 지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계급과 계층의 분화 등 내재적 요소를 별로 고려하지 못한 점이 약점이다.
▷ 천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