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사위정, 개화, 민족종교와 민중운동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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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척사위정, 개화, 민족종교와 민중운동 사상
1.척사위정
◎척사위정 사상
척사위정 사상은 의리(義理)와 도덕성(道德性)을 강조하는 우리의 유교(儒敎) 문화를 정(正)으로 수호하고,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서양과 일본 문화를 사(邪)로 규정하여 배척했다. 그 배척의 대상은 처음에는 청(淸)나라 였고, 그다음은 서양(西洋) 세력으로 확대되었으며, 개항 이후에는 일본(日本)까지 이에 포함되었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5
척사위정사상은 첫째 바른 것 [정(正)] 으로서의 성리학(性理學)과 성리학적 사회체계 및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둘째는 사악한 것 [사(邪)]으로서의 서학(西學)과 서양문물 그리고 서양 세력 및 이들을 따라 배우는 일본 세력을 배척하자는 것이다. 셋째는 성리학적 세계관에 의해 중화를 우러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존화양이(尊華攘夷), 바른 것을 높이고 이단을 물리친다는 숭정벽이(崇正闢異)의 명분론(名分論)을 계승하는 것이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5
위정척사운동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보면, 1860년대는 통상(通商) 반대운동, 척화주전론(斥和主戰論)으로, 1870년대에는 개항(開港) 반대운동으로, 1880년대에는 개화(開化) 반대운동으로, 1890년대에는 항일의병운동(抗日義兵運動)으로 발전하였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5
척사위정운동은 조선왕조의 전제주의적(專制主義的) 정치체제, 봉건적(封建的) 경제체제, 신분(身分) 차별적(差別的) 사회체제, 화이론적(華夷論的) 세계체제를 유지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국왕 고종(高宗)과 정부의 개화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척사위정운동은 당시의 시대적 과제 중에서 반외세 자주 운동으로서는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었으나, 반봉건 근대화 운동으로서는 부정적 측면을 가진 민족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5
◎대원군 정권의 척사위정 정책
대원군의 내정(內政)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에 반해서 외교(外交)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흔히 대원군의 외교 정책을 쇄국정책(鎖國政策)이라고 불러 왔다. 쇄국(鎖國)이란 말은 나라를 잠근다는 뜻으로 외국과 일체의 교섭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대원군 집권기에 여전히 중국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었고, 일본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쇄국이란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맞지 않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8
대원군의 외교정책은 조선의 통치이념인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衛正] 이를 위협하는 사악한 세력을 배척하는[斥邪] 정책, 즉 척사위정정책(斥邪衛正政策)이었다. 이러한 대원군의 척사위정정책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1866년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에 일어난 신미양요(辛未洋擾)이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8
현제 대원군의 척사위정정책에 대한 평가는 세계 대세에 눈이 어두운 고루하고 완고하며 시대 역행(逆行)적인 정책이었다는 부정적 견해와 대외적인 민족적 위기에 즈음하여 과단성 있게 대응한 정책이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8
어쨌든 대원군의 외교정책인 척사위정정책은 전통적 쇄국정책과는 다른 외세 침공에 대한 새로운 대응방식으로서, 광범위한 민중(民衆)들의 반침략적(反侵略的) 지향(志向)과도 부합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체제외적(體制外的) 과제인 반외세 자주(反外勢 自主)라는 시대적 과제에 충실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뒷받침 아래 쇄국양이(鎖國攘夷)정책을 계속적으로 강행한 것은 그 대내적인 전통체제 강화책과 더불어 객관적으로 역사발전의 방향에 합치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이는 서양 여러 나라들과의 직접적이고 자주적인 개항의 기회를 스스로 봉쇄 차단하는 것이 되었다. 즉 체제내적(體制內的) 과제인 반봉건 근대화(反封建 近代化)에는 역행하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8
◎의병운동으로의 전환
참고문헌
※ 참고문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좌한국철학』, 예문서원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경세원, 『다시 찾는 우리 역사 근대·현대 제 3권』, 한영우 지음
·이철승, 『동학사상에 나타난 자아관의 성립 근거와 의의』「철학연구」제87집, 철학연구회
토론거리
1. 1884년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일으킨 정변은 일단 성공하여 박영효·서광범·홍영식·서재필·김옥균 등이 실권을 장악하고, 국가제도를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정강·정책을 발표하였다. 변법개화파가 내건 혁신정강은 김옥균이 쓴 (甲申日綠)에 의하면 모두14개조에 이르고 있는데, 이 개혁안은 서구의 근대국가를 모델로 한 것으로서 이론적으로는 매우 참신한 것이었다. 신분제도의 폐지나 지세제도의 개혁 같은 것은 호소력이 큰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김옥균이 30대 초반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20대 청년들이 주동이 된 이 혁명은 엄청난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심순택(우의정), 김윤식(판서) 등 동도개화파의 요청으로 원세게가 지휘하는 청나라 군대(1,500명)의 개입으로 3일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들은 말로는 일본의 힘을 빌려서 근대국가를 만들고자 하였다고 하지만 실상은 일본이 조선의 국방문제나 내각에 대한 문제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친일당인 변법개화파는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정변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진정 애국자로서의 행동이었는지, 친일파였기 때문에 매국노로서의 행동이었는지 그 점에 대해서 토론하여봅시다.
2.갑오농민전쟁은 기 기록과 시기에 따라서 동학란,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운동, 갑오농민혁명, 갑오농민전쟁, 동학무장봉기 등 학자에 따라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동학농민혁명 과 갑오농민전쟁 을 두고 보면 이러한 논쟁의 이유는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이 사건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주체가 동학교도라면 동학농민혁명이고 주체가 농민이라면 갑오농민전쟁입니다. 둘째, 이 사건이 동학이라는 종교적인 이념을 지향했는가, 아니면 농민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농민민본주의가 그들의 지향이념이었는가 하는 것에 따라 선자와 후자로 나뉘어 진다. 마지막으로 혁명인가 전쟁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들이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기존의 사회체제를 무너뜨리고 농민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지향했기 때문에 혁명이라 할것인지, 무력투쟁이라는 외형적 투쟁 형태와 피지배계층인 농민세력이 지배세력과 외세에 투쟁한 사실에 따라 전쟁이라 할 것인지에따라 선자와 후자로 구분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갑오농민전쟁과 동학농민혁명중 어느 쪽으로 기록되어야 더 옳은 표현인지에 관하여 토론하여봅시다.
3.근대 철학사의 대표적인 사상으로는 척사위정·개화·동학사상을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리(義理)와 도덕성(道德性)을 강조하는 우리의 유교(儒敎) 문화를 정(正)으로 수호하고,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서양과 일본 문화를 사(邪)로 규정하여 배척한 척사위정, 일본의 재정·군사적 협력을 받아 서구형 근대국가를 만들려는 젊은 변법개화파(變法開化派)로 대표되는 개화, 백성인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밑으로부터의 사회변혁(社會變革) 움직임이었던 동학사상 중에서 여러분이 지지하시는 사상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이고, 만약 그 사상이 완벽하게 성공하여 현제까지 왔다면 어떤 모습일지까지 토론하여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