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와 철학-비판적 사고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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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생명윤리와 철학-비판적 사고 스크랩
1) 서울에서는 이틀에 한 명꼴로 아기가 버려진다.
본문분석
전반적으로 기사의 본문이 제목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체적으로 서술했다고 보기는 힘든 글이다. 기사의 제목은 서울에서 아이가 많이 버려지고 있다는 것인데 비해 기사의 주요 내용은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방에서도 서울에 올라와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하고 간다고 이야기 하는 등 주제와는 다른 내용들도 보이고,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설치한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되는 아이의 명수는 지난해 8월 입양특레법 개정 이후 3배 이상 늘어나 급속도로 많아지고 있다.’며 아이들의 유기되는 수를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등 너무 국소적인 것으로 포괄적인 것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특히, 기자는 베이비박스나, 시설 앞에 버려진 아이들 말고도 더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예를 들면 서울에서 유기되어 사망한 아이들의 수와, 보육시설 및 기타장소에 보내진 아이들 모두를 조사해 보았더니 그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글 마지막에서도 교회 관계자의 말인 “길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아이가 없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버림받는 아이가 늘어간다는 게 안타깝다”라던가 “자원봉사 도움이 없었다면 아이들 돌보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내용을 언급하여 자칫 잘못 보면 유기되는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쓴 기사가 아닌,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를 홍보하는 글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기자는 베이비박스의 유기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장점만 부각할 것이 아닌, 좀 더 신중히 고려하여 그 곳에 버려진 아이들이 결국 어떻게 되는지 더욱 상세하게 서술해 이를 통해 유기되는 아이들이 많아지지 않도록 경고 하는 형태의 글을 개시했어야 한다. 즉, ‘이 장치를 사용하는 이들은 대부분은 아이가 입양되길 원하는데. 사실상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며 출생신고와 가족관계등록 의무조항과 법원 하가제등 여러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게 되어 대부분의 유기아들은 보육원에서 맡겨지게 된다. 그 수 또한 점점 늘어나 운영이 힘들어 지고 있음에도, 서울시는 이 문제에 대해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적절한 대책도 마련되고 있지도 않다’는 내용의 추가가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이 기사에서는 아이들이 버려지는 주된 이유를 다른 것이 아닌, 교회 관계자가 말한 그대로 인용하여 “입양특례법개정”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이 문제를 독자들이 기자가 제시한 방향으로만, 한정된 시선으로만 보게 하여 독자들의 생각을 차단하고 있다. 기자는 이 문제 말고도 다른 다양한 예를 들면 10대 미혼모의 증가 같은 다양한 요인을 제시하여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야 했다.
또 본문에서는 입양특례법이 왜 개정이 되었는지, 개정된 내용은 무엇을 시사 하는지 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면만 앞세워, 입양특례법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실제 입양특례법은 미신고 해외 입양아의 수를 줄이기 위한 정책으로, 버려지지 않고 친부모의 손에서 자라는 아이의 수를 기르려는데 그 목적을 둔 좋은 측면도 존재하므로, 기자는 양측의 평형을 맞춰 독자들에게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정책개정에 영향을 미쳤던 인물 중 한명인 실제 입양아 “TRCK"(해외입양인모임)의 제인 정 트렌카 대표는 ”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 권리가 있다“라며 익명의 입양은 아이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 하였다. 특히 보건복지부에서는 이 정책으로 해외입양이 줄어들고 있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음으로 보아, 입양특례법과 버려지는 신생아 수의 증가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하기 에는 시기상조라는 평가라 언급한 기사도 존재한다. 더군다나 기사에서도 서술되었듯이 많은 이들이 영아유기율의 증가가 법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자나, 국가에서 법의 다른 측면을 제시, 홍보하지 않아 생긴 오해이다. 즉, ‘분할신고’라는 절차가 존재하는데 이 절차는 친양자관계증명서에 출생 신고하는데 있는 것으로 이것은 아이의 입양이 완료되고 나면 출생 사실이 친모의 기록에서 삭제되는 제도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제도를 모르고 있어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개정안을 원인으로 보아 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이 절차에 대해 교육 등을 통해 홍보되는 절차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 사회가 미혼모에 대한 시선을 바꾸고 보다 적극적으로 이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또한 10대의 임신을 막기 위한 보다 강력한 법의 존재가 이 문제의 본질 원인해결요소로 적합하지 않나 싶다.
2)초중학생, 가정 경제수준 높을수록 학교적응↑↑↑
기사분석
자신의 집이 잘 산다고 생각하는 학생일수록 학교에 더 잘 적응한다. 기사의 첫 구절이다.이 말이 과연, 가정 경제수준이 높을수록 학교에 더 잘 적응한다는 기사 타이틀과 상응하는 말일까? 아니다. 잘산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경제수준이 높은 것은 다르다. 잘산다는 것은 사람마다 자신의 만족도에 따라, 주변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요소이다. 쉽게 말하면 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잘 산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고, 집의 위치에 따라 잘 산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다. 또한 실제적으로 경제적 지위가 있어야 잘산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심리적으로 부유하면 잘산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는 것처럼 잘산다고 생각하는 것의 의미는 참 모호하다. 이처럼 서로 다르게 해석되는 두 말을 한 기사에서 동시에 언급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과 비슷하게 가정의 경제수준을 ‘상’으로 인식하는 집단이 ‘중’으로 인식하는 집단보다 학교적응도가 높았고 ‘하’라고 인식하는 집단은 가장 낮은 학교 적응도를 보였다고 쓰여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조차도 경제수준을 아이들에게 상중하로 나누라는 것 자체가 너무 추상적인 잣대를 요구한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든다. 상중하의 경계를 뚜렷하게 나눌 수 있는, 그런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연구결과를 낸 것 자체가 누구에게나 신빙성 있는 자료라 하긴 힘들 것이다. 이렇게 연구를 진행하는 것보단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각 집의 경제력을 판단하여 결론을 내었다면 좀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 연구에서 참여한 아이들은 서울 지역에 소재한 6학년 270명, 중학교 3학년 270명 총 540명의 학생들로, 이 학생들만으로 전체 학생들의 경제수준대비 적응정도를 표본화 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표본이 서울에 있는 학생들만 포함이 되어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가정경제수준이 정말 낮은 학생은 서울보다는 지방 쪽에 많지만 그 학생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 되지 않았다. 또한 표본의 학생들은 같은 학교 학생들이므로, 같은 지역에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 하에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 간에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은 환경에서 비교를 한 것은 정확한 조사라 하기 힘들다. 이렇게 같은 지역에서 소수로 한정된 곳만 조사할 것이 아닌, 서울이 아닌 다른 여러 지역에서 다수의 학교를 표본으로 삼아 최종 결론을 내야 한다.
또, 기사에서 연구의 결과로 가정의 경제수준이 높다고, 높다고 생각 할수록 학교에 더 잘 적응한다는 원리. 이 원리의 인과관계가 과연 타당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연구의 예외는 요즘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도 나왔듯이, 소위 말하는 상위계층 집안 타워팰리스 아이들의 사건만 보아도 그렇다. 그들의 부모는 부유하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오히려 남들의 자동차를 훼손시키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일명 “문제아”들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학교에 더 잘 적응하게 해주는 필요조건은 ‘경제수준’이 아니다. ‘주변 환경’의 문제이다. 경제수준은 다만 주변 환경과 상관관계가 있는 요소일 뿐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수준의 원인이라 말하긴 어렵다. 기사에서 표현한 대로 경제수준이 높아 더 좋은 사교육을 받아 학업성적이 좋아져 학교적응을 잘하게 된 것이 아니라, 기죽지 않고 열등감 없이 자신감이 충만해서 학교적응을 잘 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타워팰리스 아이들처럼 부유한 집의, 잘산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항상 부모님이 서로 갈등을 겪고 싸움이 빈번한 집에서 살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열등감만 쌓는 다면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이과 같은 맥락으로 성적이 ‘상’인 경우 학교적응을 더 잘한다는 결론은, ‘상’인 성적 즉 상인 성적을 받을 수 있게 해준 가족환경이나 기타 환경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 학교적응을 잘하는 것이지 학교성적이 좋다고 학교적응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 예로 성적이 좋지 못해도 좋은 환경에서 자라 자신감이 넘치고 성격이 쾌활한 아이들도 학교에 적응을 잘 하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학교에 더 잘 적응하는 이유 또한, 여자여서 라기 보다 여자라는 환경으로 갖게 되는 특성 때문에 더 잘 적응하게 되는 것이고 남성도 여성과 같은 영향을 같게 되면 적응을 잘 할 수 있게 되므로 기사 끝에서 연구진이 말을 인용한 것인 ‘여학생일 경우 학교 성적이 ‘상’이라고 인식할 때, 자아존중감이 높을 수 록, 가정의 경제수준이 높다고 인식할 때 학교적응을 잘 했다‘라는 표현은 다만 상관관계일 뿐 너무 앞선 결론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