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 대처리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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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치경제] 대처리즘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대처란 누구인가
Ⅱ. 대처리즘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
Ⅲ. 대처리즘
Ⅳ. 대처리즘의 영향
Ⅴ. 평가와 교훈
본문내용
. 대처란 누구인가

마가릿 대처(Margaret Thatcher)는 1925년 12월 3일 영국 중부지방 랭커셔주 그랜럼에서 알프레드 로버츠(Alfred Roberts)와 어머니 베아트리스(Beatrice)사이에서 둘째딸로 태어났고, 가정환경은 경제적으로는 중하류층이며 독실한 기독교(감리교)집안이었다. 때문에 자성, 자율, 자제가 생활의 원칙이었고, 대처의 인생철학은 아버지 알프레드 대처의 영향이 컸다.(‘첫째는 일, 둘째는 교회, 셋째는 정치’)
옥스퍼드 화학과를 졸업하고, 24세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보수당에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며, 1959년에 34세의 나이로 하원의원이 되었다. 이후, 65년 주택공사 장관과 연금장관, 66년 재무장관, 67년 연료전력장관, 68년 교육장관과 교통장관, 70년에는 다시 교육장관으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1975년에는 보수당 당수가 되어, 당을 이끌며 79년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다. 1979년 5월 3일부터 1990년 11월 22일까지 11년 반 동안 임기 4년의 수상직을 3번 역임하였고, 1990년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사임하였다.


Ⅱ. 대처리즘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처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 반 동안 수상직을 3번 역임하였는데, 대처가 처음 수상에 오르던 1979년의 당시에는 영국 사회에 소위 ‘영국병(British disease)’이라 불리는 사회적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1970년 영국은 치유 불가능한 중병을 앓는 ‘유럽의 환자’로 취급받았다. 영국병의 증세는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바닥을 맴도는 경제성장으로 나타났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번지는 ‘파업열병’이었다. 대처는 영국병의 원인을 게으르고 방만한 경영을 하면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정부에 의존하는 사용자(기업)와 반기업적이고 호전적인 행태로 국가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 노동조합. 즉, 영국 사회의 모두가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에서 찾았다.
또한, 당시 영국은 그 동안 치유해지 못했던 만성적인 복지병 때문에 IMF의 구제금융까지 받는 경제위기의 국면을 맞았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 등은 급격한 경제성장과 제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국제 경쟁력이 크게 향상되었는데, 이는 영국경제와 크게 대조되는 상황이었다. 영국경제는 이들 잘 나가는 나라들과는 달리, 산업의 공동화 속에서 경제성장의 위축과 무역수지의 적자 등으로 어려움이 지속된 것이다.
1950년 이후 여론의지지 속에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민간기업의 국유화와 사회복지 지출의 증대, 조세개혁을 통한 분배정책의 강화는 물론 NHS(National Health System)의 설치와 국민보건수혜를 위한 정부지출의 증대 등 사회주의적 복지지향 정책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간기업은 투자의욕의 감퇴로 그만 활력을 잃고 R&D(Research & Development 연구개발) 투자의 위축과 기술 인력의 부족 등으로 제조업의 생산성이 떨어졌으며 설상가상으로 석유파동까지 겹치면서 경제성장의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끝내 영국병이 더욱 악화되었던 것이다.
영국의 복지병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정부가 경제성장의 뒷받침 없이 오직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을 지는’ 복지국가를 만들려고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영국정부는 1950년대 이후 줄곧 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완전고용 달성과 그 증진에 두고 오직 확장일변도의 재정 및 금융정책을 중단없이 추진해왔다. 정부가 스스로 국민 모두를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살피려고 하니 해마다 그 복지예산을 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복지지향의 경제정책을 펴는 가운데 경제가 과열되어 인플레이션이 생길때면 정부가 나서서 자발적 내지는 준자발적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권고부터 법 제정을 통한 규제에 이르기까지 콩놔라 팥놔라 하듯 임금과 물가를 통제하려고만 했다.
그 결과 영국인들은 거품 속 복지예산의 증가에 대한 폭발적 기대로 늘 불만족한 상태가 지속된 선진국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복지향유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비하여 영국경제의 성장력이 낮은 데서 문제가 더욱 어렵게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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