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 부버의 만남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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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부버의 생애와 저서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1878년 2월 8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탄생했다. 그의 부모는 특별히 지성적이거나 종교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중산층의 유대인이었다. 3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14세때까지 조부모 슬하에 지냈다. 그의 조부모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조부 솔로몬 부버(Solomon Buber, 1827~1906)는 히브리어 학자이면서 히브리 문학의 특수한 장르인 미드라쉼(Midrashim) 문학적 해석과는 달리 성서 속에서 의미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 미드라쉬이다. 미드라쉬의 어원인 “다라쉬(darash)”는 “조회하는 것(to inquire)” 혹은 “조사하는 것(to investigate)"을 의미한다. 미드라쉬에는 할라카 지향의 미드라쉬와 아가다 지향의 미드라쉬의 두 유형이 있다. 전자는 성서로부터 율법을 추출하고자 애쓰며, 후자는 윤리적․도덕적 함축을 탐색한다. 탈무드와 동시대에 팔레스타인에서 집성되었다.
-성서해석, 잠언 그리고 귀중한 전설의 독특한 혼합체-의 비판적 저서를 계속 출간할 정도로 그 방면의 권위자였다. 동시에 그는 하스칼라 운동(Haskalah Movement) 히브리어 Haskalah는 “계몽(enlightenment)"이라는 뜻이다. 18세기에 유럽 중부에서 발생한 이 계몽운동은 오로지 종교적 탐구에만 빠져있는 유대인들이 세속적 탐구를 통해 세계에 대한 지식을 넓히도록 촉진했다. 하스칼라는 유대인들이 탈무드와 성서에만 의존하여 탐구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유럽식 해방의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힘썼다. 이러한 세속적 계몽운동을 따르는 무리들을 마스킬림(Maskilim)이라 부른다.
의 뛰어난 학자였다. 솔로몬과 그의 부인 아델라(Adela)는 박식한 유대인이었다. 즉, 그들은 별다른 부담감없이 늘 토라(Torah)와 미드라쉬를 공부하는 것처럼, 칸트(Kant), 괴테(Goethe), 쉴러(Shiller) 등과 같은 독일인들의 저작들을 공부하였다. 손자인 마르틴 부버도 조부모와 마찬가지로 유대 고전뿐만 아니라 비유대인의 작품들을 고루 섭렵했다.
그리하여 마르틴 부버는 조부모 댁에서 10세가 될 때까지 학교에 가지 않고 유대 고전뿐만 아니라 하이네(Heine), 쉴러(Schiler) 등과 같은 독일작가들의 시와 산문까지도 탐독하였으며, 히브리어뿐만 아니라 독일어, 프랑스어도 공부하였다. 이처럼 유년시절의 부버는 조부모를 통하여 풍부한 정신적 기반을 닦게 되었으며, 이것이 훗날 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