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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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을 읽고
나는 전공수업 마지막 과제로 주어진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이란 책을 읽고 레포트를 쓰라는 얘기를 듣고 서점에 가서 책을 샀다. 나는 책을 사서 처음 제목을 읽었을 때 “창가학회가 무엇일까?”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이 무슨 연관이 있기에 둘이 같이 묶어 제목을 하였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먼저 창가학회의 뜻이 무엇인가하고 찾아보니 일본의 승려 니치렌[日蓮]이 주창한 불법(佛法)을 신앙의 근간으로 하는 종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가치를 창조한다는 뜻도 있었다.
나는 뜻을 찾아 본 후 교수님이 직접 쓰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는 글을 읽어보니 교수님이 왜 창가학회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셨는지 동기가 나와 있었다. 그리고 창가학회에 대한 사회에 시선들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창가학회를 왜색종교라고 비판을 하였고 교수님이 일본에서 헌책방에 들러 둘러보다 ‘창가학회 드라큘라론’ ‘창가학회 망국론’ ‘창가학회 패배자론’등의 창가학회를 비판하는 책들이 있었다고 했다. 교수님은 그 책들을 가져와 모두 읽기 시작했다고 했고 읽어보니 비판이 아닌 비난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살벌한 말이 써졌고 일방적인 저주가 난무한 책이라고 했다.
교수님은 일본사회 내에서 창가학회의 무엇을 비판하는지 또 비판이 수십 년이 이어졌는데도 어떻게 그 수많은 신도를 확보할 수 있었는지, 실제 조직 내부가 어떤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창가학회가 많은 신도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공명당이라는 정당을 조직해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단시일 내에 제3당의 지위까지 확보한 점이 일본 사회의 주류 종교 세력과 자민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의 경계 대상이 된 이유가 아닌가, 그 연장선당에서 창가학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끊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교수님은 일본의 창가학회 신도들 관계자들과 얘기를 해보니 ‘이상하고 문제가 많은 종교’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교수님의 연구와 글을 읽다보니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역시 나쁜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교수님은 일본종교가 폭넓고 깊다는 것을 느껴 연구의 범위를 넓히고 교류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일본의 신종교인 천리교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천리대학교에 갔다고 했다. 교수님은 한국인 천리교 신도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었는데 천리교는 일제 시대에 조선 땅에서 가장 열심히 포교하던 일본계 종교였고 지금도 일본의 천리교 신도들 중 상당수가 재일한국인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재일한국인이라면 일본의 식민지 시대 때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건너온 것이고 또 일본사회에서 무시당하고 가장 낮은 신분취급을 받는데 어째서 일본의 종교인 천리교를 믿는 다는 것일까? 또 어떻게 신도들 중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 대부분 나와 같은 의문일 것이다. 나는 재일제주인의 삶과 정신이라는 교양수업을 듣고 있어서 재일제주인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었기에 더욱 의문이 갔다.
책에서는 재일한국인들은 해방 이후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외국인에 대한 취업 제한조치 때문에 공무원, 경찰, 교사 등의 직종과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했고, 대학 졸업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중소기업의 회사원과 자영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을 안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1920년대 일본은 공업지대와 탄광지대에서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고 하여 초기에는 주로 회사가 한국 농촌에서 노동력을 모집한 경우가 많았는데 전쟁이 확대되면서 필요한 노동력을 강제로 끌고 간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대학에 진학하는 재일한국인 2세의 비중이 늘어났고, 사회적 차별이 점점 완화되면서 직업도 다양화되었다고 한다. 나의 진외종조부도 재일한국인이시다. 설날이나 추석 때 가끔 오시면 많은 얘기를 해주시는데 진외종조부 역시 차별도 겪고 우리 한국 사회에서 흔히 불리는 3D업종에 종사하셨다고 했다. 그러다 진외종조부 자식들 세대부터는 직업의 폭도 넓어졌고 차별도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창가학회의 일본인 관리자들이 생각하는 재일한국인의 범주 속에는 귀화를 한 사람과 영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의 구분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그저 재일한국인의 범주를 한국에 있다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보니 내가 알던 것 보다 더 넓었다.
교수님은 직접 일본으로 가서 재일한국인을 면담했다고 했다. 결과를 보니 모두 공통적으로 밀항을 했다고 했다. 해방 직후 일본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은 해방의 기쁨과 기대를 안고 한국에 돌아갔지만 한국 사회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인 어려움, 한국전쟁 등 많은 일이 이러나면서 많은 사람들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나는 글을 읽었을 때 나도 저들과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허무하고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그렇게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한국인들은 ‘조센진’이라 불리며 따돌림도 당하고 차별을 당했다고 한다. 교수님이 면담을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언어의 벽이라고 하였다. 재일한국인 2세,3세들은 모국어도 일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재일한국인들은 별로 없었다. 한국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쓰지 않아서 잊어버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이 구절을 읽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창가학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공명당이라는 정당이다. 공명당은 오랫동안 제3당으로서 자기 위치를 다졌고 10년 동안 자민당의 제안을 받아들여 연립여당으로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창가학회가 왜 정치에 참여했냐 하면 창가학회의 제2대 회장인 도다가 생각했던 종교의 참모습이기 때문이었다. ‘남묘호렌게쿄’라는 제목을 열심히 봉창하며 생명과 우주 사람만상이 깊이 이어져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절복 활동을 하도록 권장했다. 강요가 아니라 이웃들에게 믿음을 권유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정치활동도 제시했다. 도다는 ‘왕불명합’이라는 교리를 제시하였고 이런 교리를 제시한 배경에는 니치렌의 가르침이 있었다. 창가학회의 회원들은 공명당을 지지하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선거 때마다 지인들에게 투표를 부탁하는 등 각종 지원 활동을 한다. 또 선거권을 얻기 위해 귀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는 책을 거의 다 읽어 갈 때 즈음 의문이 점차 풀려가는 것 같았다. 재일한국인들이 왜 창가학회의 신도가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창가학회 안에서는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에는 ‘이들에게 창가학회는 일본의 종교가 아닌, 자신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종교일 뿐이다.’라고 끝맺음이 되어 있었다. 이렇듯 창가학회는 사회든 사회구성원 누구든 뭐라고 비난할 종교가 아니라고 본다. 자신에게 좋고 편안하고 행복하면 그만인 것이다.